재산 상속은 세금으로 가능하지만
정치에서 권력 상속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왕조시대에나 가능한 일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왕의 남자들은 권좌에 앉지 못했다
커피를 들고 가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화제가 된 정치인이 있다. 대권주자로 거론될 정도인데도 수행원 도움 없이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간다. 지금 ‘잘나가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모습인가 하면 한때 ‘잘나갔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그랬다.
패션에서 정치 스타일까지 콘셉트가 비슷해 두 사람은 늘 비교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윤석열 현 대통령과 대단히 가까운 관계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가히 ‘왕의 남자’로 불릴 만하다.
두 사람은 자기가 속한 진영이 좋아할 만한 정치적 스타일을 갖고 있다. 상대 진영의 비판에 전혀 굴하지 않는 직설적 화법이 그것이다. 조국 전 장관은 한때 소셜미디어에서 진보 진영의 이론가로 평가받았다. 한 장관 역시 논리적 반박이나 직선적 언사에서는 조 전 장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양 진영에서 두 사람을 향한 팬덤이 만들어진 이유다.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정치 영역에 들어간 이후에는 특유의 거침없는 논리 전개를 구경할 일이 드물어졌지만, 한 장관은 장관이 된 이후에도 그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이 여의도 정치의 문법을 어느 정도 감안하려는 태도를 보인 반면, 한 장관은 ‘반여의도’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7일 국회 예결위에서 “김어준씨나 황운하 의원과 같은 ‘직업적인 음모론자’들이 이 국민적 비극을 이용해 정치 장사를 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야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아무리 입법부의 일원이라도 적군이라면 전혀 존중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역력하다.
한 장관은 지난 6월 갤럽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4%로 여권 차기 대권주자 중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지난 9월에는 9%로 여권 인사 중 1위로 뛰어올랐다. 주요 지지층은 50대 이상이다. 젊은층이 좋아할 법한 패션 스타일은 뜻밖에 노년층에 더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나이는 조 전 장관보다 적지만, 지지층은 반대인 셈이다. 기득권을 비호하는 한 장관의 언행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지율의 확장성 측면에서 보면 한 장관은 한계가 보인다. 50대 이상, 보수, 국민의힘 지지자, 대구·경북에 기울어져 있다. 이 지지층은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 분포도와 거의 일치한다.
조 전 장관이 ‘적폐청산’ ‘검찰 개혁’이라는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의제를 공유했듯, 한 장관은 검찰 출신이라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DNA를 함께 보유하고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가장 잘 아는, 또 정치적 DNA가 같은 사람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임기 초 70%대 이상, 임기 말 40%대의 비교적 견실한 지지율을 유지했음에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정권 초기에 이미 3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는 윤 대통령이 한 장관에게 정권을 넘기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이태원 참사 등에서 드러난 현 정부의 국정 능력으로 볼 때 향후 국정지지율은 쉽게 반등하기 어렵다.
여권에서도 검찰 출신 정치인으로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는 모험은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을 것이다. 2024년 총선에서 한 장관을 출마시켜 바람을 일으키자는 말이 나오지만, 현역 의원들은 한 장관의 여의도행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최근 정치사에서 ‘왕의 남자’들은 권좌에 앉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노무현 정권의 정동영·유시민, 문재인 정권의 조국 등이 그랬다. 이유가 무엇일까. 조 전 장관과 한 장관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본 여야 인사들은 “조 전 장관이 PK(부산·경남) 친문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한 장관은 검찰 출신의 정치 스타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 성공을 이루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자들에게 재산 상속은 세금만으로 가능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권력 상속은 그렇지 않다. 권력 상속은 왕조시대에나 가능했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주권자들에 의해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