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새 정부와 함께한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대통령선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까지 합치면 2022년 한국 정치는 오롯이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이었다. ‘법과 원칙’, ‘자유적 가치’, ‘반지성과의 대결’ 등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딛고 출범했다. 특히 전임 정부 검찰총장 출신의 야당 대선후보라는 ‘특수성’은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 48.6%에게 정치인 윤석열은 ‘정권심판’의 상징이었다.
마치 ‘문재인 대 윤석열’처럼 흘러간 대선 구도는 역대 가장 치열한 선거를 만들었다. 동시에 정보전달의 한계도 초래했다. 평생 검사로 일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신념, 국가운영 계획 등은 부차적 사안이 됐다. 이로 인해 지난 8개월 유권자들은 기존 정치인과 다른 ‘대통령 윤석열’의 행보에 신선함 혹은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특히 ‘10·29 이태원 참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화물연대 파업’ 등에서 윤석열 정부의 색깔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한미동맹 강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 약속’, ‘대북정책 담대한 구상’ 등도 유사한 맥락이었다.
각각의 사안을 펼쳐놓고 보면 윤석열 정부의 특성은 몇 가지 키워드로 묶인다. ‘법치’, ‘대결’, ‘협치와 통합’이다. ‘검찰’, ‘수사’, ‘편승’ 등은 실천영역에 속한다. 이중 ‘협치와 통합’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무시된 사례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그럼에도 야당과의 협치나 국민통합에 대한 키워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 실증하는 것이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다. 정부 출범 직후 50%대였던 긍정 평가는 한때 20%대까지 추락했다. 통합은커녕 기존 지지층마저 부정 평가로 돌아섰다는 의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개월여의 시간이 지났다. 윤석열 정부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검찰 정부’라고도 불린다. 정부 주요 인사들이 검찰 출신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국정운영 방식도 검찰과 닮았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산안 통과가 필요하지만 다수당인 야당과는 대화 시도조차 없이 ‘무조건’ 협조하라는 식이다. 집권부터 국정운영까지 기존 정치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섣불리 예측도 어렵다. 결국,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 윤석열 정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법치
윤석열 정부의 특색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키워드는 ‘법치’다. 행정·경제·안보 등 정부를 구성하는 주요 요직에 검찰·법원 출신 인사들을 배치했다. 일반적으로 집단과 집단이 겪는 사회적 갈등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한다. 이를 ‘정치’라고 부른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법치가 정치를 대체했다. 갈등 요인 해결보다 ‘누가 법을 어겼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해결의 대전제인 ‘문제를 인식한다’의 단계까지는 가보지도 못한 셈이다.
접근상의 미묘한 차이는 결과상의 큰 차이를 만든다. 10·29 이태원 참사, 화물연대 파업 등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참사를 두고 유가족과 정부의 입장이 다르다. 유가족은 윤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 부실 대응 책임자 조사와 문책, 진상·책임 규명 과정에 피해자 동참, 유족 및 생존자 간 소통 기회 마련, 희생자 추모시설 마련, 참사의 정부 책임 공식 발표 등을 요구한다. 법이 개입할 여지는 책임자 문책 정도에 있다. 요구사항을 수용하든 거부하든 이는 정치의 영역이다. 그러나 정부는 참사 당시 관할 기관인 용산경찰서, 용산소방서 등에 대한 수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결국 ‘누가 법을 어겼나’로 회귀한 것이다. 이마저도 책임은 하위 실무진들에게 한정된다. 법대로 하되, 적용 대상은 제한적이다.
실제로 158명이 사망한 사건이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 중 책임자는 여태 특정되지 않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책임론에 대해 이중, 삼중의 방어막을 쳤다. 지난 7월 경찰국 신설을 추진하며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 지휘·감독 권한이 있다”고 강조했던 이 장관은 참사 이후 “(경찰) 지휘·감독 권한이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야당의 해임요구에 대해 윤 대통령 역시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수사에 열을 올리는 사이 지난 12월 13일 참사 현장에서 친구를 잃고 살아남은 고등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법과 수사로만 참사를 수습할 수는 없다는 것을 159번째 사망자로 확인한 셈이다.
사회적 갈등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화물연대 파업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보름 넘게 이어진 화물연대 파업의 핵심 쟁점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적용 품목 확대 요구였다. 화물연대 측은 “지난 6월, 5차례에 걸친 교섭 뒤 정부가 안전운임제 지속과 품목 확대를 논의키로 약속했지만, 그후 정부와 국회가 관련 논의를 진척시키지 않아 불가피하게 파업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파업은 사회재난’이라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운영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전운임제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쟁점은 ‘약속 이행’이다. 하지만 정부는 불법적 요소를 찾아 처벌하겠다고 대응했다. 해결을 위한 ‘문제 인식’이 아닌 또 ‘수사’에만 초점을 맞췄다.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파업은 보름 만에 종료됐다. 표면적으로는 법과 원칙의 승리처럼 보인다. 실제로 해결된 것은 무엇일까. 파업을 주도한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은 지난 12월 12일 ‘안전운임제 연장’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갈등은 일시적으로 덮였을 뿐,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의 역할이 국민이 법을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것에 있다면 비대한 정부기관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 법무부만 존재하면 된다. 대통령을 선출하고 다양한 정부 기관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지난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은 법조인이 아닌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이다. 대화와 타협은 대통령의 중요한 역할이다.
■대결
윤석열 정부의 색깔을 보여주는 또 다른 키워드는 ‘대결’이다. 대내적으로 ‘문재인 정부’, 대외적으로 ‘남북관계’가 대표 사례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이들 갈등은 북한을 매개로 통합되고 있다. ‘언론’, ‘노조’, ‘민주당’과의 대결도 잇따랐다. 모두 집권 8개월여 만의 일이다.
한미동맹 강화는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의 핵심이다. 임기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국제무대에서의 만남은 한미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외교’는 임기 초,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됐다.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평가가 엇갈리는 외교 성과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발언 논란이 남았다. 지난 9월 22일 미국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환담한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OO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해당 발언에 비속어가 섞였고, 바이든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이라는 해석이 나오며 논란이 확산됐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 OO라는 표현은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를 겨냥한 것이고,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했다. ‘태극기 휘바이든’ 등 조롱 섞인 패러디만 쏟아졌다.
발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정확한 해명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를 비속어, 바이든이라고 자막을 달아 보도한 특정 언론사와 ‘대결’을 시작했다. 국익을 해쳤다고 지목된 MBC는 대통령 순방 시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가 내려졌다.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만든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도 중단됐다.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와의 대결에 연동됐다.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가 본격화하며 북한 문제가 국내 정치 사안이 됐다. 해당 사건은 향후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주요한 이정표다. 관료의 ‘추론·판단’이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호 일방적 주장이 난무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은 단순하다. 검찰은 당시 정부가 고 이대준씨 사건을 두고 ‘월북몰이’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씨가 어떻게 북한으로 가게 됐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반면, 구속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은 이씨가 ‘다른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실종 당시 무궁화 10호 폐쇄회로(CC)TV 사각지점에서 신발(슬리퍼)이 발견된 점’, ‘북한 인원의 질문에 월북이라고 답변한 SI(특수정보)첩보’ 등을 근거로 월북 추정이 합리적 판단이었다고 맞선다. 진실과 별개로 사안을 둘러싼 공방이 격화되며 대북 첩보의 획득, 분석, 인력과 관련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노출됐다.
대결 국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월 13일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말했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로 재정만 파탄났다는 이유를 들었다. 주 52시간제로 대표되는 주당 노동 가능시간 연장, 탈원전 정책 폐기 등 윤석열 정부가 내놓는 굵직한 정책마다 전임 정부 뒤집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결’은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이 되고 있다.
■협치와 통합
“우리 공동체의 기본가치가 자유라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들과는 협치나 타협이 가능하지만 자유를 제거하려는 사람들, 거짓 선동과 협박을 일삼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지난 12월 13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거짓 선동과 협박을 일삼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현재까지 윤 대통령은 민주당과의 ‘협치’ 방안,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과의 ‘통합’ 방안 등을 내놓지 않았다.
대통령 지지율 추이를 살펴봐도 협치와 통합이 실종됐다는 점이 확인된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임기 첫해와 비교해봐도 눈에 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은 대통령 직선제가 확립된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이후 모두 8명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를 공개했다. 이중 집권 1년차 2분기(7~9월)에 가장 부정 평가가 높았던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부정 69%)이었다. 당시는 ‘광우병 파동’이라는 국가적 쟁점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큰 쟁점 없이 부정평가 부문 2위(61%)에 올랐다.
2022년 12월 말 기준, 추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 중·후반대를 오간다.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12월 2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긍정평가는 직전 주에 비해 2%포인트 오른 33%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59%였다. 이를 연령별로 보면 전 연령대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앞서다 60대 이상부터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앞선다. 정치성향별로 보면 진보, 중도, 모름을 선택한 응답자들은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앞섰고,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들은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앞섰다(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해당 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긍·부정 평가의 이유다. 대통령 직무 수행을 긍정 평가한 이유 중 압도적 1위가 ‘노조 대응’(24%)이다. 부정 평가한 이유는 독단적/일방적인 성향과 소통 미흡이 각각 9%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외교, 경제, 무능함 등이 8%로 공동 2위다. 산재한 정보를 취합하면 지지율 상승은 파업에 대한 대응이 보수층의 긍정평가를 이끌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연구위원은 “지지율에는 사이클이 있는데 윤 대통령은 당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을 앞서는 등 집권 4년차에야 볼 수 있는 현상이 지난 8개월여 동안 압축돼 나타났다”며 “최근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사안에 대한 원칙 대응이 보수층을 결집시킨 효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지율이 반등을 넘어 상승하려면 일종의 기어변속이 필요한데 이는 정책이라는 콘텐츠가 소통과 협치와 만날 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협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이 끝난 후에도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세력’, ‘타협 불가’ 등의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 건강보험 등에 대한 정책전환 역시 설득보다 통보에 가깝다. 강경한 태도에 대한 지지가 독단적이라는 부정평가로 변하는 임계점까지 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보통 지지율은 국민과 소통을 강화할 때 올라가는데 윤 대통령은 소통을 줄이면서 지지율이 올라가는 기이한 사례”라며 “야당과의 협치도 이를 일종의 구걸로 보는 것 같다. 상대를 굴복시켜야 하는 검사 습성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와는 잘 맞지 않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물러날 때까지는 협치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2027년 5월까지다. 약 4년 반의 시간이 남았다. 이 기간 동안 ‘나 홀로 국정’을 이끌 생각이 아니라면 전환점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