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음악’ 표절 인정·사과 이후 다른 노래도 유사성 지적
“수천 곡 듣다 보면 걸러내기 어려워”…”시스템 마련 필요” 목소리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가수 겸 작곡가 유희열이 만든 노래가 잇따라 과거 발표된 일본 곡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그의 싱어송라이터 경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가요계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반복되는 고질적인 표절 논란에 ‘사람이 하는 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재발을 막기 위해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유희열 이번엔 2002년作 논란…소속사 ‘묵묵부답’
20일 가요계에 따르면 이날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성시경이 2002년 발표한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가 일본 밴드 안전지대의 보컬 다마키 고지(玉置浩二)의 ‘해피 버스데이 ∼ 아이가우마레타 ∼'(Happy Birthday~愛が生まれた~·1998)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는 유희열이 작사·작곡·편곡을 단독으로 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두 곡의 도입부가 유사하고, 공교롭게도 제목과 가사도 일부 비슷하다는 게 유사성을 주장하는 논지의 골자다.
유희열의 표절 논란은 엿새 전인 14일에도 불거진 바 있다.
그는 ‘유희열의 생활음악’ 프로젝트의 두 번째 트랙인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아쿠아'(Aqua)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유희열은 당시 “제보를 검토한 결과 곡의 메인 테마가 충분히 유사하다는 데 동의하게 됐다”며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됐다”고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표절은 인정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벌어진 일이라는 취지의 해명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유사성 논란이 터져 나오면서 그의 사과의 진정성에도 흠집이 나게 됐다. 그가 대표로 있는 소속사 안테나는 이날 오후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 가요계 잊을 만하면 표절 논란…법원도 ‘알쏭달쏭’
가요계에서는 이처럼 잊을 만하면 곡이 다른 노래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터져 나온다.
일찍이 1990년대 인기 혼성그룹 룰라는 정규 3집 타이틀곡 ‘천상유애’가 일본 노래 ‘오마쓰리닌자'(お祭り忍者)를 베꼈다는 논란에 활동을 한때 중단했다.
가수 김민종 역시 1996년 3집 수록곡 ‘귀천도애’가 일본 밴드 튜브의 ‘서머 드림'(Summer Dream)을 표절했다는 논란을 겪고 한동안 가수 활동을 멈춘 바 있다. 당시 이 노래의 작곡가는 “(튜브의 노래의) 분위기를 많이 따랐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 논란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통에 상급심에서 표절 여부가 뒤집어지는 사례도 있다.
지난 2013년 법원은 박진영이 작곡한 ‘섬데이(Someday)’가 김신일이 작곡한 ‘내 남자에게’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항소심에서 5천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2015년 “음악 저작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정도의 화성을 사용했다”며 표절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표절 여부가 그만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법원은 두 저작물의 멜로디·화성·리듬 등의 ‘실질적 유사성’과 문제가 된 곡이 기존 저작물에 의거해 만들어졌는지 ‘접근 가능성’ 등을 침해 판단 기준으로 삼아 시비를 가린다.
법원의 판단을 구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고 패소할 경우 배상액이 클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문제가 제기되면 소송보다는 합의하는 길을 택한다.
박진영이 만든 지오디의 데뷔곡 ‘어머님께'(1998)는 미국 래퍼 투팍의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작사·작곡 저작권은 투팍 등 유니버설뮤직퍼블리싱과 워너채플뮤직코리아가 관리하는 작곡가들에게 돌아갔다.
이승철의 ‘소리쳐'(2006) 저작권도 작곡가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영국 가수 가레스 게이츠의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의 원작자에게 대부분을 넘겨줬다.
◇ 가요계 “표절 가려내기 쉽지 않아” 토로…해결 방법은 없나
가요계에서는 신곡을 낼 때마다 이 같은 유사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지만, 100%란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 유명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새 음반을 낼 때 A&R(Artists and Repertoire) 팀이 블라인드 방식으로 노래를 들어보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할 때만 발매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수백, 많게는 수천곡 씩을 듣는 통에 세밀하게 가려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완벽하게 가려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아티스트가 좋아하는 음악에 영향을 받는 것까지는 좋겠지만, 창작 방식에 있어서 위험성이 있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피해야 한다”며 “기획사 단위에서 음악을 검증하고 필터링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평론가는 “당장 (유사성 문제가) 불거지지 않더라도 뒤늦게 드러나면 후폭풍이 크다”며 “이런 것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기획사) 내부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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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0 18:1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