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축제는 많다! 가을이 되니 ‘축제 공화국’이라는 말이 와닿을 정도로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감출 수 없는 유쾌한 표정은 축제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다. 얼마 전, 무려 3년 만에 재개된 서울세계불꽃축제에는 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으로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압도적인 인파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먹고 마시고, 웃고 이야기하는 건, 화려한 불꽃을 잊게 할 만큼 더 강렬한 경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손꼽아 기다렸을 부산국제영화제도 유쾌한 분위기 속에 종료되었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음악과 노래가 있고, 이야기와 추억이 있는 축제를 떠올리면 괜히 몸과 마음이 들썩인다. 가장 떠들썩하고 관심을 많이 받은 것이 서울불꽃축제, 부산국제영화제일 뿐, 각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다양한 축제들이 열렸고, 또 열리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축제들은 지역을 대표할 만한 특산물이나 특색을 내세우기도 하고, 지역과 무관하게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걸 내세워 축제로 만들기도 한다. 강원도만 하더라도 닭갈비축제, 마임축제, 한우축제, 커피축제, 옥수수축제, 산천어축제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축제가 있다. 시작이 어떻든 지역에서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어가고 있는 축제들도 적지 않다. 축제의 본질이 그렇듯, 사람들이 모이는 떠들썩하고 흥겨운 행사는 지역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다른 지역의 성공적인 축제 사례는 곧잘 벤치마킹이 되기도 한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사례는 국내의 많은 영화제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울산국제영화제, 강릉국제영화제가 뒤를 이었고, 그 외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르를 특화한 영화제도 속속 만들어졌다.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춘천SF영화제를 비롯해서 다큐멘터리, 음식 등을 주제로 한 영화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영화제가 열린다. 모든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영화 축제는 우리나라 영화마니아 층의 증가와, 관객의 수준, 깊이까지 보여주는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세계적 수준의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 ‘설국열차’를 제작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벤치마킹을 통해 엇비슷한 축제를 연다는 건, 그만큼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축제의 경험을 다른 지역에 이식하여 꽃피운다는 의도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다른 지역의 성공 노하우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특색과 개성이 넘치는 축제일 것이다.
모든 축제가 세계적인 축제가 될 필요도 없고, 그게 꼭 상업적인 성공과 연결되어야만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사람들이 즐길 수 있으면 성공적인 축제가 될 수 있고, 작게 시작했지만 시간의 더께가 쌓이면서 역사가 있는 축제로 자리를 잡아갈 수도 있다. 세계의 많은 유명 축제가 마을 축제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축제가 된 것처럼 말이다. 어디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규모와 상관없이 성공적인 축제가 아닐까. 그중에서 어떤 건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떤 건 작은 마을 또는 지역축제로 남고, 또 어떤 축제는 부산국제영화제나 서울세계불꽃축제처럼 전국적이거나 국제적인 축제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축제의 계절에 아쉬운 게 있다면, 숫자(주로 참여 인원)로 축제의 성패를 가늠하는 안타까운 잣대이다. 축제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좋겠지만, 참여 인원이 성과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순간 축제는 참여, 즐거움, 기쁨 등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사람들을 ‘동원’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면, 유명 가수들을 초대하는 것이 주요한 행사가 되고, 축제의 본모습은 뒤로 물러나게 되니 말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음식과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흥겨운 시간들, 추억들이 성공이나 실패라는 간단한 단어로 평가되거나 요약되지 않으면 좋겠다. 축제의 규모와 참여 인원이 얼마나 되든, 축제는 신나는 축제일 뿐이니까. 강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