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인스타에만 혈안인 이도 있지만, 동기 관계없이 진정한 헌신”
우크라이나에 힘을 보태겠다며 고국을 떠나 국제의용군에 자원한 이들을 두고 다소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개인의 명성을 높이거나 자국 내 문제에서 도피하려는 동기로 ‘람보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냉소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WP는 이날 저마다의 이유로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투를 지속하고 있는 세계 각국에서 온 참전용사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영국군 대위 출신인 한 30세 남성은 작년 2월 개전 직후 우크라이나로 왔다.
고향인 영국 남부에서 보안회사 사무직으로 일하던 그는 어머니와 누이들과 함께하던 소소한 일상을 뒤로하고 우크라이나군 입대를 결정했다고 한다.
최근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이 남성은 WP 인터뷰에서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에는 끔찍한 일이지만, 내게 지난 9개월은 인생 최고의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앞으로 50년 여생을 사무실에 앉아 파워포인트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지금 내게는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모습도, 그저 폭력을 행하는 모습도 둘 다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흐룰프’로 불리는 캐나다 퀘벡 출신의 남성은 세계 각지의 참전용사들로 구성된 비공식 부대 노르만 여단의 사령관을 맡고 있다.
우크라이나인 부인과 결혼해 딸을 둔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대의에 헌신하고 있다며 “후퇴는 없다”고 다짐했다.
상당수 의용부대원은 이미 산화했다.
캐나다 서스캐처원에서 가족과 함께 농장을 일구던 조지프 힐더브랜드(33)는 두 차례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파견 경험을 마지막으로 군복을 벗겠다던 아내와의 약속을 어기고 우크라이나에 왔다가 작년 말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숨을 거뒀다.
부인 카리사는 “조지프가 친구들과 대화하던 끝에 결국 (참전을) 해야겠다고 느꼈던 것 같다”며 “그 생각이 조지프의 영혼을 계속 괴롭혔다”고 말했다.
‘아이비 리그’ 컬럼비아대를 졸업해 구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미국인 제이슨 맨(37)도 아프가니스탄 복무 경험을 토대로 우크라이나에 도움을 주고자 ‘팔랑스’ 부대에 들어왔다.
그는 외국인 전투원들이 종종 ‘자살 임무’에 투입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며 “전쟁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했다.
전쟁의 속성상 늘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자원해 입대한 이상 누구를 불평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참전 6개월 차인 한 익명의 미국인은 “다들 원래 속했던 곳에서는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며 “우크라이나에 온 사람들은 모두 낭만적이면서도 마음에 상처가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큰 무언가가 되길 고대하는 이상주의자들 같았다”고 말했다.
WP는 전쟁 초반 자원입대한 외국인 상당수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인증샷’ 포즈를 취하는 데에 혈안이거나, 슈팅 게임을 하듯 하거나, 본국에서의 성폭력 등 각종 혐의에서 벗어나고자 우크라이나에 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아무런 공중 지원도 없이 지상전을 치러야 했던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본 서방 출신의 참전용사들이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P는 “우크라이나 의용부대에 참여한 각자의 동기가 무엇이든 이들의 헌신과 희생은 진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많은 의용부대원이 전쟁의 참상을 겪고도 떠나지 않았고,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싸우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극단주의연구소(C-REX)에 따르면 현재까지 의용부대원 약 100명이 전사하고 1천명 이상이 다쳤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 전투요원 약 1천∼3천명 정도가 활동 중이며, 대부분 국제여단의 3개 대대에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은 의용부대 세부 사항에 대한 WP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정규군 수십만명에 비하면 매우 소규모인데다 전투에 미치는 영향도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지만, 이들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됐을 경우에는 서방도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또 이들의 활동은 자국 정부를 향해 법률적, 도덕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외국 교전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국내법 위반 사항이다.
그렇지 않다고 한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러시아를 상대로 한 갈등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애써 회피하는 것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WP는 지적했다.
법률과 규제의 테두리 밖에 있는 서 있는 탓에 누구로부터 전투 및 후방 지원을 받아야 할지도 불분명하다.
WP는 “전쟁 11개월째를 맞이한 지금, 우크라이나에 남은 의용군은 매우 헌신적으로 싸우며 혹한을 견뎌내고 있다”며 “언어적 장벽과 문화적 긴장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에서도 일부 예비역들이 우크라이나전에 참가한 바 있다.
이근(39) 전 대위의 경우 작년 3월 국제여단에 합류했으나 다리를 다쳤다며 2개월 만에 귀국, 여권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