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아슬아슬…’군중 밀집’ 유도하는 사회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이태원 참사’로 우리 사회는 일상 속의 과밀 문제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일자리가 몰린 지역과 핫플레이스에서의 군중 밀집 상황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습니다.
첫 리포트를 통해 ‘이태원 참사’에서 군중 밀집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어떠했는지 살핀 뒤, 우리가 매일 출퇴근길 때부터 겪는 과밀 둔감 사회의 실태, 그리고 압사 참사를 겪은 뒤 환골탈태한 해외 사례 등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김지수 기자입니다.
[부실 대응에 책임 회피까지…참사 대책 통할까 / 김지수 기자]
전방위 압수수색을 진행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전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용산소방서장 등을 입건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전 11차례의 112신고를 통한 ‘압사’ 경고를 외면했던 경찰.
서울경찰청장에겐 참사 발생 후 80분이 지난 뒤에 보고가 됐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밤 11시 19분에야 상황을 인지했습니다.
참사 직후 소방 무전 기록을 보면 30차례 가까운 차량 통제와 진입로 확보 등 경찰 출동 요청이 긴박하게 이뤄지던 상황이었습니다.
용산구청장은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사전 대책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김지수 기자> “참사 직후 정부가 희생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보단 책임을 회피하려 한 모습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경찰의 최종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일부 책임 있는자들의 형사 처벌로만 회복될 수 없는 지점이 남아 있는겁니다.”
<이상민 / 행정안전부 장관(지난 달 30일)>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하고 있고요….”
문제가 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발언 외에도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었고 “구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며 논란을 자처했고, 참사 당일 느긋했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모습도 공분을 샀습니다.
축제 주최자가 없어 선제적인 안전관리가 쉽지 않다던 정부의 주장 등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책임이 더 부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배상 소송 움직임도 커지고 있습니다.
<김성순 / 법무법인 ‘참본’ 변호사> “국가배상 챔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별도로 공무원의 위법행위와 참사 간의 인과관계라는 요건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국가배상 책임이 법원에서 인정되기 위해선 향후 수사 및 법원 소송 과정에서 참사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서 인과관계란 요건을 별도로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건 위험도가 높은 과밀 상황 예방 등을 포함한 재발 방지 대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영주 /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사람이 과밀하다는 것 자체의 위험성 이런 부분들도 잘 인식을 해야 할 필요성도 있거든요. 개방된 공간, 장소를 한정하기 어렵거나 여기에 밀집된 인원을 추정하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에는 이런 개념이 조금 더 고도화 되는 상황이 되거든요.”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구축한 재난안전망은 정작 이번 참사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만큼 위험 감지 뿐 아니라 현장 조치가 반드시 뒤따르도록 무엇이 달라져야 할지에 집중이 필요해 보입니다.
연합뉴스TV 김지수입니다.
[이광빈 기자]
천만 인구가 사는 서울에서 과밀은 일상입니다.
아슬아슬한 출퇴근 길 등 만연되고 위험한 과밀 일상, 차승은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과밀 일상화 ‘지옥철’…곳곳에 도사린 압사위험 / 차승은 기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이태원의 골목입니다. 길이 45m, 폭 4m 내외로, 55평 남짓입니다.
<차승은 기자> “사고 당시 이 골목에 몰린 인원은 1,000명에서 1,200명 정도. 1㎡라는 작은 공간에 약 16명의 사람이 몰려있던 겁니다.”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군중 밀집 임계점은 1㎡당 5~6명. 이를 넘으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폭으로 커지는데 이태원 참사는 임계점의 약 3배에 달했습니다.
<공하성 /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1㎡당 5~6명 정도까지 사람이 밀집하게 되면 숨 쉬기도 어렵고 또 가슴 압박의 우려도 있어서…”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과밀 문화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차승은 기자> “서울 지하철역 구간 중 가장 붐빈다는 9호선 노량진역 앞에 나와 있습니다. 과연 어느 정도일지 한번 들어가보겠습니다.
출근시간이 되면서 승강장이 승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열차 안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열차를 한두 차례 보낸 뒤에야 탈 수 있을 정도입니다.”
<김태선 / 경기도 부천시> “내리려는데 못 내리시는 경우도 있고…사람이 내리고 타야 되는데 당신들도 급하니까 내리는 사람들을 그냥 밀고 들어와 버린단 말이에요.”
지난해 이 구간의 최대 혼잡도는 185%. 정원의 2배에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4호선 한성대입구에서 혜화역 사이, 2호선 방배에서 서초역 사이 순으로 최대 혼잡도가 높았는데, 모두 100%을 훌쩍 넘었습니다.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김포골드라인이 241%로 최대 혼잡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경기장이나 공연장도 대표적인 밀집 장소입니다. 물론 정해진 좌석이 있고, 안내하는 사람도 있지만 폭이 좁은 복도나 계단 등 위험 요소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실제로 18년 전 경북 상주 공연장에선 입구로 5,000여 명이 한꺼번에 몰리며 11명이 숨지고 16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박정민 / 경기도 김포시> “4층 앉는 팬분들은 경사가 높다 보니까 조금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부는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다중밀집 인파사고 안전관리 지침을 제정하고, 한 달 동안 지역축제와 마트 등에서 안전관리 시설물에 이상은 없는지, 대피로는 있는지 등을 집중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도 혼잡한 지하철역과 번화가 점검에 착수해 부족한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대피로를 확보할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현장을 점검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게 우선이라면서도, 근본적으로 과밀의 위험성을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연합뉴스TV 차승은입니다.
[코너 : 이광빈 기자]
지난해 기준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부산과 비교해도 서울이 4배나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수도권에만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는데요.
이렇다 보니, 서울, 수도권 거주자들은 인파가 밀집된 상황에 처하기 일쑤입니다.
출퇴근 시간대에 많은 승객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욱여넣어 진채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립니다. 가뜩이나 수도권에 일자리가 몰려있는데, 수도권 내에서마저도 쏠림 현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 노선도는 강남 등 일부 지역으로 집중되는 현실입니다. 더욱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런 지역으로 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동산, 교통 정책은 이를 더 부추깁니다. 모든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외쳐왔지만, 수도권에는 신도시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가 많은 강남 등의 지역으로 새로운 지하철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도심으로 연결되는 새 지하철은 시간이 지나면 콩나물 시루처럼 되어버립니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병원 등의 인프라도 주요 지역으로 몰립니다.
과밀화의 악순환이 이뤄지는 셈이죠.
더구나 수도권 내에서도 일부 ‘핫플레이스’는 나날이 번창하는데, 그 외 지역의 상권은 위축되는 양상도 보입니다.
지금의 현상으로는 과밀사회는 더 강해지고 있을 뿐, 완화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에는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로 혼잡한 장소를 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구조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기 전까진 과밀사회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보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밀로 인한 재난을 막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압사 참사의 트라우마를 딛고 군중 밀집 행사가 안전하게 관리된 해외 사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7월 베를린을 찾았다가 우연히 한 퍼레이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20대에 가까운 트럭에 사람들이 올라타 테크노 댄스를 추고, 수만 명이 이 행렬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바로 러브 퍼레이드였는데요. 1989년 테크노음악을 즐기면서 평화를 노래하자는 취지로 생겨난 러브 퍼레이드는 최대 200만 가까운 인파가 몰릴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행사에서 압사 사태로 21명이 숨지고 650여명이 다쳤습니다. 독일 사회는 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군중 관리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고 지침서도 만들었습니다.
그런 영향 탓일까요. 압사 참사 후 12년 만에 재개된 이번 퍼레이드는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로 무질서해 보였지만, 굉장히 질서정연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도로는 차량 통행이 차단돼 온전히 축제를 즐기는 시민의 공간이었습니다.
퍼레이드 곳곳에는 서너 명씩 조를 이룬 경찰들이 인파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행렬 뒤에는 경찰차들과 앰뷸런스가 따라붙었습니다. 경찰차 뒤에는 청소 차량이 뒤를 이었는데요. 깨진 맥주병과 쓰레기가 바로 수거됐고 도로는 물청소까지 됐습니다. 청소가 끝난 도로에는 축제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해외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를 겪은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꼼꼼하게 인파 통제 매뉴얼을 만들었는데요.
이봉석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여야, 민생 챙기겠다더니…강대강 대치로 협치 ‘안갯속’ / 이봉석 기자]
이태원 참사 후인 지난 1일 일본 시부야의 핼러윈 행사.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평소보다 늘어난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쳐가며 행인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보안지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안내에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서울의 사고 소식을 접한 일본 학생들도 어느 때보다 조심하는 모습입니다.
<도쿄 고교생> “우리가 (이태원 참사처럼) 압사당하지 않고 거리 구석으로 달아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죽지 않으려 시부야 교차로는 피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이 이렇듯 군중 밀집 지역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일본인들이 한곳에 몰리는 것을 피하는 풍토가 마련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1년 7월 효고현 아카시시의 불꽃놀이 압사사고였습니다.
당시 축제가 끝난 뒤 인도교에 인파가 집중돼 11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습니다.
현장 통제에 실패한 것을 ‘굴욕’으로 받아들인 현지 경찰은 1년 뒤 120쪽 분량의 치안 매뉴얼을 내놨습니다.
또 일본 경시청은 효고 사고 이후 재치 있는 말투로 질서를 유도하는 ‘DJ 폴리스’도 운용해오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새해맞이 행사에도 최대 200만 명이 몰리지만 대형 사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매뉴얼이 잘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재난관리 종합기구인 연방재난관리청은 2005년 대형행사 주최 측의 행동 요령을 담은 257쪽 분량의 매뉴얼을 마련했습니다.
매뉴얼은 특히 1㎡당 약 3.5명이 몰릴 경우 원치 않는 접촉이 생기고 5명 이상이 집중될 경우 사고 발생 위험이 커진다면서,
CCTV로 모니터링하면서 사전에 현장 요원들을 통해 경고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3년 시카고 나이트클럽 사고 등 참사가 교훈이 됐습니다.
이밖에 1993년 21명이 깔려 숨지는 사고를 겪은 홍콩도 일방통행을 만드는 등의 방안을 마련했고,
한 달 전 축구장 압사 참사가 일어난 인도네시아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경찰의 부실 대응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큼 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차종호 / 호원대 소방안전학과 교수> “매뉴얼이 없다고 사고가 나는 게 아니고 매뉴얼이 없어도 관행적으로 모여서 회의하고 진행하고, (자막 전환) 사람들이 중요하고 그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중요하지 매뉴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거든요.”
대규모 군중 행사는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관련 대책을 꼼꼼하게 세우는 것만으로 큰 사고를 피할 수 있다는 조언입니다.
연합뉴스 이봉석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수도권이 인구 과밀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교통 혼잡 등으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목소리,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국토의 10분의 1 정도인 땅에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살고 있으니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구조는 더욱 강해집니다. ‘이태원 참사’로 과밀에 따른 안전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는데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과밀 구조, 과밀 문화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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