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미국이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사드(THAAD)를 한국에 배치하자, 중국은 한국에 대해서 가혹한 보복을 한다. 이는 의외이면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공격 무기가 아닌 방어 무기에 대해서 경제적 문화적 보복을 한 이유는 약소국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에 있다. 등소평의 개혁 개방으로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쌓자, 바로 그 힘을 이웃 제압에 쓴 첫 사례에 해당된다.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이제 칼집에서 칼을 빼 휘두른 것이다. 이 무렵부터 중국은 전랑(戰狼 싸우는 늑대) 외교를 펼친다.
보복 가운데 가장 컸던 것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막은 한한령(限韓令)이다. 한국의 영화 가요 드라마 등이 모두 중국에서 금지됐다. 요즘 와서는 한한령을, 사드 보복을 넘어서서 한중의 문화 충돌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 정부의 필사적인 한류 막기에는 중국이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에 침식당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있다. 한국의 대중 예술은 서구 문화의 첨단에 섰고,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국 당국은 표면적으로 한류를 막는다. 그러나 한국에서 뜨는 드라마는 거의 실시간으로 중국의 인터넷에 올라온다. 모두 해적판들이다. 심지어는 ‘안나’라는 드라마처럼 중국에서 방영되지도 않는 드라마의 내용이 틀렸다고 따따부따를 한다. 만리 방화벽 등을 통해서 인터넷과 언론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국 당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한류의 불법 유통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방치한다. 그렇다면 결국 한한령이라는 것이 공짜로 한국의 대중 예술을 즐기려는 국가적 술책에 불과한 것인가?
중국 공산당은 한편으로는 국민의 정신을 제어하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적당하게 즐기게 해서 불만 에너지를 줄이려 한다. 이래서 한한령과 불법 유통 방치라는 모순이 나타난다. 중국은 공자 이래로 예와 음악으로 백성을 도덕적으로 교화시키려 했다. 음악과 예술은 황제가 백성을 교화하는 방편이다. 예술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전통은 모택동에게도 이어진다. 그는 ‘연안 문예 좌담회 강연’에서 예술은 혁명을 위한 수단임을 강조한다. 시진핑 역시 예술을 국가 통치의 수단으로 본다. 한류는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의 첨병이며, 이것이 중국 인민의 정신을 좀먹는 것을 결코 두고 보지 못한다. 중국 예술을 철저하게 검열해 6.25 때 중공의 얼음 병사들이 미군을 물리쳤다는 ‘장진호’와 같은 애국주의 영화가 흥행하게 만든다.
‘통치 수단으로서 예술’이라는 정책은 크게 보자면, 진시황의 중국 통일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천하를 통일한 뒤, 세계 통일 국가는 법 규정을 통해서 중앙 권력이, 황제가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시진핑 역시 똑같다. 중국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중앙 집중 경제다. 멀쩡한 기업을 망하게 하거나, 이름 없는 회사를 재벌로 키운다. 철저하게 권력이 조종하는 경제다.
언론과 학술 역시 정부가 감시하고 통제한다. 정부가 원하고 허용하는 것 이외에는 모두 탄압당한다. 나아가 전 인민을 감시하는 디지털 전체주의를 완성했다. 2019년까지 전 세계 7억7000만 개의 감시 카메라 중 4억1580만 개가 중국에 있었다. 혈액형 홍채 DNA 등의 개인 정보를 안면 인식 기술과 결합해서, 감시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인민을 감시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한다. 이를 기반으로 개인들에게 ‘사회 신용’ 점수를 부여한다.
중앙 권력이 국가의 모든 것을 기획 조직 감시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겉으로 드러난 것은 ‘위대한 중국’의 건설이다.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세계 최강국이 되어서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다. 중앙 권력이 모든 것을 기획 조종 감시하는 체제가 과연 세계 최강국을 만들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자유가 없는 예술은 말라 죽기 마련이다. 한한령으로 중국 시장을 잃은 한류는 전 세계로 진출하면서 거대한 성공을 이뤘다. 반면 한류를 금지한 중국은 겉으로는 한한령을 유지하지만, 속으로는 압도적 수준의 한류의 불법 유통을 막지 못하는 위선적인 국가가 되었다. 한한령은 중국의 문화적 침몰을 가져왔다.
손영식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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