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경산수화가 홍성모가 영월의 사계와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을 주제로 한 그림을 선보인다. 겸재정선미술관은 1월 5일부터 3월 1일까지 ‘2023 겸재 맥 잇기 초청기획전1’로 홍성모의 ‘영월에 들고, 영월을 품다’와 ‘영월인의 천년 미소-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을 개최한다.
홍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영월의 사계를 그린 진경산수화 15점과 나한상을 그린 수묵화 130여 점을 선보인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나한상 그림은 영월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백나한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홍 작가는 질박하고 안온한 미소의 나한상들의 모습이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온갖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한의 모습은 중생에서 부처로 향상된 것이기 때문이다.
홍 작가는 거친 화강암으로 조각된 나한상의 질감을 살려내기 위해 한지에 직접 옻칠과 황칠을 하거나 여러 가지 돌가루로 만든 석채를 쓰거나 꽃물로 물을 들이는 등 재료에 대한 새로운 형식들을 시도했다. 정으로 쪼아낸 입체적인 나한상을 평면에 도드라지게 표현하기 위해 점묘법을 이용했다. 정 대신 붓으로 조각을 한 것이다. 홍 작가가 나한상을 표현함에 있어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나한상에 대한 재해석이다. 부처의 제자이면서 깨달음을 얻은 나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한에 대한 불교적인 본래 의미까지도 담아내는 한편, 불상에서나 볼 수 있는 광배를 그려 넣기도 하고, 훈민정음의 글자들을 배경으로 하기도 했다. 또 고려시대에 국가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나한재를 지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용의 모습을 나한상에 그려 넣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호랑이를 함께 그려 넣거나 불교의 사물(四物) 중 하나인 목어를 그려 넣기도 했다.
오백나한상 얼굴에 깃든 다양한 표정은 그 당시 대중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백의 얼굴 중에는 반드시 바라보는 이의 얼굴과 닮은 얼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백의 나한상은 깨달은 자의 모습이면서 중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화가의 손을 거쳐 재탄생한 나한상은 바라보는 이의 번뇌를 없애주고 힘겨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홍 작가는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창령사 터 오백나한’ 展에서 처음 오백나한상을 만났다. 그리고 바로 나한상에 매료되었고, 발굴된 나한상 317점 모두를 그리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그 후 그는 나한상이 출토된 창령사 터와 최초 발견자인 김병호 씨를 찾는 등 나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고 한다. 홍 작가는 지금까지 250여 점을 완성했다.
창령사 터는 강원문화재연구소가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 실시한 학술 발굴조사 과정에서 ‘창령사’ 터였음이 밝혀졌다. 2001년 5월에 작은 암자를 짓기 위해 평탄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나한상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때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을 비롯하여 형태가 온전한 나한상 64점과 나한상의 머리 118점, 나한상의 신체 일부 135점 등 총 317점의 나한상이 발견됐다. 이후 나한상들은 국립춘천박물관의 상설전시실에 일부 전시되고 나머지 대부분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오다가 2018년 특별전 ‘창령사 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展을 계기로 국립박물관 최우수 전시로 선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재 전시됐고, 이후 부산시립박물관과 영월 귀향전, 2020년 호주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됐다.
창령사 터 나한상은 화강암을 높이 30∼40cm 크기로 가공하여 한쪽 면을 다듬어 만든 형태이다. 나한들의 표정이 워낙 다양하고 사실적이어서 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너무나도 인간적이며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한들을 마주하면 누구나 그 질박하고 해학적이면서 친근한 표정에 매료된다.
나한은 부처의 제자이면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에 이른 이로,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를 말한다. 창령사 터 나한상은 불가의 진리를 깨우친 성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 주변에 있는 대중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이 삶의 현실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에 찬 나한도 있고, 가사를 덮어쓰고 고개를 숙인 채 명상하는 나한도 있다. 또 산과 바위, 동굴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수행하는 구도자의 나한이 있는가 하면,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는 나한도 있다. 이처럼 모든 나한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대중의 모습을 하고 있어 우리 마음에 쉽게 다가온다.
강원도 영월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성모 작가는 실경산수화를 그려오고 있다.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그릴 수 없는 그의 실경산수화는 체험적 교감의 과정이며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형상을 내포한 풍경들을 새롭게 읽으며, 자연 속에서 느끼는 순수하고 보편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 또한 전통을 중시하면서 자연이라는 변함없는 대상을 내면적인 의지를 담아 그려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나한상 그림 역시 그 체험적 교감의 맥락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홍 작가는 원광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와 동국대 예술대학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이당미술상, 한국 전문인 대상 등 다수 수상했다. 성균관대 예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다수의 심사위원을 지냈다. 현재는 한국미술협회 한국화 분과위원장, 후소회 상임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문의 (02)2659-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