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터미널’ 실제 주인공
이란 출신 노숙인 나세리 사망
왕정 반대 운동 추방…각국 전전
1988년부터 샤를드골 공항서 노숙
직원들 ‘알프레드 경’ 별명 붙여
2006년 영화사서 거액 받고 떠나
숨지기 몇 주 전에 다시 돌아와
국제공항에서 18년간 노숙하며 영화 <터미널> 제작에 영감을 준 이란 남성이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영화가 제작되면서 한때 수십만 달러를 손에 쥐고 공항을 나갔으나,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공항에 돌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 당국은 이날 이란 출신 남성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가 정오 무렵 공항 2층 터미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특별한 질병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세리는 1988년부터 2006년까지 이 공항의 터미널 벤치에서 노숙하며 살아 화제가 된 바 있다. 워낙 오랜 기간 기거했기에 공항 직원들과 친구가 됐고, 직원 시설에서 샤워를 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그에게 ‘알프레드 경’(Lord Alfred)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가 이역만리 파리의 공항에 머물게 된 경위는 그의 말밖에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는 1945년 이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란에서 왕정 반대 운동을 하다가 1970년대에 여권 없이 추방됐다. 그는 1986년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세리의 난관은 어머니가 사는 영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그는 파리 기차역에서 난민 관련 서류가 든 가방을 분실했는데, 샤를드골 공항에서의 출국심사는 통과됐다. 하지만 서류가 없어 결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입국이 불허됐고, 샤를드골 공항으로 돌려보내졌다. 프랑스 당국은 그를 추방하려 했지만 ‘무국적’ 상태인 그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 공항 터미널에 방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엄격해지고 있던 유럽의 이민법과 프랑스의 관료제 문제가 작용했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나세리는 1999년 프랑스로부터 난민 지위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공항에 머물기를 선택했다. 공항에 워낙 오래 머물다보니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이 오히려 불안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장기간의 공항 생활은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저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그를 진찰했던 공항 소속 의사는 나세리가 “이곳에서 화석화됐다”며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우려된다고 말한 바 있다. 한 공항 직원은 그를 ‘외부 생활이 불가능해진 죄수’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는 세간의 관심을 끌어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으로 제작됐다. 2004년 톰 행크스 주연의 <터미널>과 프랑스 영화 <로스트 인 트랜짓>, 오페라 <비행>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 <터미널>의 경우, 주인공은 가상의 동유럽 국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서류가 무효화돼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면서 뉴욕의 존 F 케네디(JFK) 공항에 머무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 <터미널>의 제작사 드림웍스는 영화화 판권으로 나세리에게 적어도 수십만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도이체벨레(DW)는 그가 드림웍스로부터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를 받았다고 전했다.
나세리는 영화사에서 받은 돈을 갖고 2006년 공항을 떠났지만 프랑스의 보호소와 호텔 등지를 전전하다 사망 몇 주 전 공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사망한 나세리에게서 수천유로(수백만원)가 발견됐다고 AFP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