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생활체육화 소망”…”탁구 통해 사회 기여하겠다”
탁구 감독 현정화(53)는 여전히 열정이 넘친다.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으로서, 2024년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바쁘게 살고 있다.
지난 13일 마사회 탁구단 연습장이 있는 인천 청라도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정치권에서 영입 제의가 많이 들어오지만 싸움만 하는 정치권이 싫어서 계속 거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인 탁구를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전국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부산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5년에는 국가대표가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에는 선배 양영자 선수와 함께 금메달을 차지했고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북한의 리분희 선수 등과 함께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여자 단체전 우승을 거뒀다.
— 우리나라 체육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엘리트 체육에 대한 심도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주먹구구식으로 하다 보니 엘리트 체육 수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수업을 모두 마친 뒤에 운동하도록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체력이 약한 학생들이 수업을 다 하고 나서 오후 10시까지 운동을 한다.
시합도 토요일에 하도록 하는데, 그럼 아이들은 언제 쉬겠는가.
선수들의 체력을 어떻게 끌어 올릴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체계가 필요하다.
무작정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중된 연습이 필요하다.
— 2024년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을 맡았는데. 북한이 참가할까.
▲ 우리는 계속 노력을 할 것이다.
ITTF(국제탁구연맹)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우리 정부의 통일부나 문체부에도 계속 요청할 예정이다.
— 정치활동에는 관심이 없나.
▲ 사실은 같이 정치하자는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나는 계속 거절한다.
정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 좋은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나는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국민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저는 정치할 그릇도 아니다.
나는 정치를 싫어한다.
— 정치활동도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은가.
▲ 정치(행태)가 바뀌면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안 바뀌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계속 싸움만 한다.
정치인들이 좀 더 화합해서 잘했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체육 분야는 자신이 있으니까 (정치)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갈수록 싫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탁구라는 재능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어릴 때 가정 형편은 어떠했나.
▲ 매우 어려웠다.
초등학교 시절에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칠판에 이름이 적히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하면서 트레이닝복을 사야 했는데, 돈이 없어서 곤란했던 것도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폐결핵을 앓다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갑자기 식당 조리사로 일하게 됐는데, 늘 일찍 일어나시고 늦게 주무셔야 했다.
— 초등학교 시절에 공부는 잘했나.
▲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해도 좋았을 머리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도 어머니는 내가 운동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데 내가 탁구대회에서 4관왕을 하고 돌아왔다.
그때 탁구협회가 어머니를 설득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탁구를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 취미는 무엇인가.
▲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독서가 삶에 활기를 준다.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선수 시절에는 소설과 에세이 등을 읽었다.
최근에는 법정 스님 책을 본다.
— 별명이 피노키오인데, 무슨 이유인가.
▲ 내 코가 좀 높다.
어떤 선배가 만든 별명인데, 귀여운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 혹시 술은 많이 마시나.
▲ 술은 좋아한다.
주량은 잘 모르겠다.
대회가 끝난 뒤 회식하는 자리에서 선수들이 한 잔씩 주곤 하는데. 내가 (쓰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있으니 (주량을) 모르겠다.
— 몸이 이전보다 마른 편인 거 같은데, 건강은 어떤가.
▲ 건강은 좋다.
선수 시절보다 체중은 많이 줄었다.
선수 활동을 그만둔 몇 년 동안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더니 근육이 빠졌다.
선수 시절 갖고 있던 신경성 위염 때문에 선수 은퇴 후에 식사량도 줄였는데, 이것도 체중감소에 영향을 줬다.
요즘에는 건강관리를 위해 헬스장에 가서 뛰고 웨이트트레이닝도 한다.
매일 반신욕도 하는데, 시작한 지 30년 정도 됐다.
손발이 찼던 것이 개선됐다.
반신욕을 하면 피부도 좋아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 주말에는 주로 무엇을 하나.
▲ TV를 많이 본다.
영화보다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
한국 드라마를 즐긴다.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데, 멤버가 갖춰지면 주말에 골프를 치기도 한다.
—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왔다.
나 스스로 약간의 나태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대회에서 1등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2등은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됐다.
1등이 아니면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게임이라도 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이 안 찌는 것도 이런 성격의 영향이 있다.
또 나는 탁구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하곤 하는데,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다.
— 본인의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은 장점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에게 소홀해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탁구 감독을 하다 보니 우리 아이들을 챙겨줄 수 있는 시간이 다른 부모에 비해 적었다.
물론 거기에도 장점은 있다.
아이들이 좀 더 자립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의 손길이 느껴져야 하는 시점에 내가 그런 걸 못 해줬다는 것은 미안하다.
남편한테도 마찬가지다.
— 남편은 어떤 점이 좋아서 결혼했나.
▲ 남편과 10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남편은 성격이 좋았다.
친구들한테 두루두루 잘하고 후배들도 잘 챙기는 스타일이다.
연애할 때 남편은 나한테는 무뚝뚝했다.
그런데 툭툭 내뱉는 데서 배려가 있었다.
— 본인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언제였는가.
▲ 88 서울올림픽 당시 나는 20세였다.
5천 명이 들어올 수 있는 체육관이 관중으로 꽉 찼다.
나는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가운데 양영자 선수와 함께 금메달을 땄다.
또 일본 지바에서 열린 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 단일팀으로 출전해 우승한 것도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다.
북한 선수들과 같이 한 달간 연습해서 좋은 성과를 거뒀는데, 작은 통일을 이룬 듯했다.
— 빨리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 우리가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북한이 서로 체제를 인정해주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평화가 이뤄질 것이다.
— 당시 리분희 선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 첫인상은 도도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탁구를 잘해서 북한에서 영웅 칭호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자존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보다 한 살 어린데다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언니라고 부르면서 따랐다.
나는 깎듯이 대우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곤 했다.
그래서 리분희 선수가 나를 이쁘게 본 것 같다.
유독 우리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다.
— 리분희 선수의 추후 인터뷰를 보면 당시 현정화 선수가 과묵했다고 하던데.
▲ 내가 운동할 때는 말이 없는 편이다.
좀 냉정하고 까불거리거나 하지 않는다.
탁구 테이블 앞에 서면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리분희 선수가 선입견을 갖게 된 것 같다.
—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 현재 아이들과 남편이 미국에 있는데, 이런 생활이 10년이나 됐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꼭 떨어져서 살아야 했을까,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어머니다.
늘 곧았고 부지런하셨다.
나는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녀들을 키우면서 아플 때도 있었지만 누워서 편하게 지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내가 누구보다도 성실한 선수 중의 한 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다.
— 스포츠 분야에서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 운동을 잘하는 분들은 존경한다.
박세리, 박찬호, 박지성, 손홍민, 김연아, 박태환 등 이런 분들의 노력을 인정해줘야 한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해보니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를 안다.
—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했는데, 계기가 있었나.
▲ 우리 교실이 건물 2층에 있었는데, 탁구실 앞을 지나서 올라가야 했다.
탁구실을 몇 번 구경했는데, 선수들이 소리 지르고 (탁구공 소리가) 경쾌한 것이 좋았다.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와서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탁구를 시작하게 됐다.
그 후에 학교에서 3학년을 대상으로 선수들을 뽑았다.
운동신경이 필요하니까 각 반에서 계주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들을 추렸다.
40∼50명으로 시작했는데, 6개월 지나고 나서 10명밖에 남지 않았고 1년 후에는 8명, 또 1년이 지난 뒤에는 6명이 됐다.
이들이 탁구를 해서 중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 탁구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내가 공격을 해서 득점했을 때 짜릿하다.
상대방과 머리싸움과 기 싸움을 하는 것도 스릴이 있고 재미가 있다.
한 점 한 점 만회 득점을 해서 역전으로 이길 때에도 쾌감이 있다.
나는 탁구를 하면서 성격적으로는 끈질기게 됐다.
— 탁구 경기에서 머리싸움이 중요한가.
▲ 탁구는 과학이다.
상대방이 잘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을 놓고 싸우면 실력 있는 사람이 이긴다.
그런데 상대방이 못하는 것과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붙으면 세계를 제패하는 상대방이라도 내가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선수들이 시합하는 것을 보면, 자기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장점과 싸운다.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지 못한다.
탁구는 기술싸움이나 힘 싸움이 아니고 운영 싸움이다.
파워가 부족해도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기는 경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선수 중에는 기술이 좋은 사람이 있고, 기술은 좀 부족하지만 두뇌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두뇌게임 하는 선수가 이긴다.
— 탁구를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크게 실망한 적은 없다.
싫증이 나서 쳐다보기도 싫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탁구 감독으로서 삶은 어떤가.
▲ 감독도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리더십은 많은 사람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고, 책임감도 있어야 하며 우리가 뭘 해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도 제시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탁구를 해야 하는지도 계속 가르쳐야 한다.
— 소속 선수들이 힘들어하지 않나.
▲ 나의 기대에 맞춰야 하니까 선수들이 힘들어한다.
내가 좀 더 젊었을 때, 즉 코치 생활을 할 때는 지금보다 더 심했다.
나이가 들면서 선수들에게 나를 좀 맞추게 되는 것 같다.
— 본인 성격은 다혈질인가.
▲ 아니다.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이다.
탁구 경기를 할 때 욱하면 안된다.
나의 승부 근성은 타고난 것 같다.
지는 것은 죽는 것보다 싫다.
한 게임을 지는 것도 싫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은 무엇인가.
▲ 탁구를 생활 탁구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탁구는 좋은 운동이다.
특히 어르신들한테 좋다.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외로움을 덜 수 있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