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을 도입하고 보험금 누수를 틀어막으면서 역대급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호실적에도 웃을 수만은 없다. 금융당국은 실적 부풀리기 의혹을, 공정거래위원회는 보험금 지급 거부 담합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해보험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올 1분기 IFRS17 적용 기준 613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기존 회계기준(IFRS4)을 적용한 지난해 1분기 순이익(4491억원)과 단순 비교했을 때 무려 36.6%나 뛰었다.
다른 보험사도 마찬가지다. DB손해보험이 지난해 발표한 1분기 당기순이익은 2827억원에 불과하지만, 이번 실적 발표와 함께 새 기준으로 재산정한 순이익은 4834억원에 달한다. 회계기준만 바꿨을 뿐인데 한 분기의 실적이 2배 가까이 뛴 것이다.
메리츠화재의 지난해 1분기 실적은 2152억원에서 회계기준 변경으로 3251억원으로 늘었고, 올해 1분기 순이익은 4047억원을 올렸다. 현대해상과 KB손해보험은 1분기 각각 3336억원, 253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매물로 나온 롯데손해보험도 79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IFRS17은 보험 부채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보험업계 전체 순이익은 1분기에만 7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년 동안 생명·손해보험사가 벌어들인 순이익이 9조 2000억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아울러 새 기준에 따라 계약서비스마진(CSM) 개념이 새롭게 도입됐는데, 미래에 예상되는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것이다. 순이익과 연결되는 CSM 산정에 일부 자율성이 부여되면서 보험사가 미래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느냐, 보수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실적이 갈리게 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밖에서는 실제 보험사가 어떤 시각으로 CSM을 산정했는지 알 수 없는 셈”이라며 “매각 이슈가 있는 보험사는 당장 실적을 높여야 좋은 값에 팔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공인회계사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필두로 금감원은 CSM 산출의 합리성을 점검하고 관련 세부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공정위는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손해보험협회와 DB·메리츠·현대해상·흥국화재 등 손해보험사를 대상으로 백내장 보험금 지급 거부 담합 의혹과 관련해 현장조사를 벌였다. 필요에 따라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