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년을 돌이켜봤을 때 여당은 ‘윤심팔이’, 야당은 ‘방탄 프레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제, 안보, 외교, 민생 등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박 의원이 지난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이른바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등 정책 입안에만 몰두했던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 또한 정책 관련 주제 외에는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박 의원이 주간조선과 인터뷰를 가진 날(1월 10일)은 공교롭게도 이재명 대표의 검찰 출석일이었다. 인터뷰 날짜는 이 대표의 출석 일정이 잡히기 전에 결정됐다. 그는 이 대표의 검찰 출석 현장에 동행하지 않고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박 의원은 “우리 야당의 경우 방탄 논란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며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 우리가 잘하는 일, 즉 능수능란하게 정책적 비전을 마련하고 정치개혁에 앞장서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당은 죽어도 좋다는 ‘자생당사’ 멀리해야”
박 의원은 집권 1년 차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부터 했다. “최근 몇 달만 돌아보면 오히려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한 조치가 많았다고 본다. 노조를 강경하게 밀어붙인 뒤 이제는 시민사회단체 회계장부까지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안보에 있어선 북한 무인기에 경고 방송을 하며 전쟁을 불사하겠다고까지 했다. 사회적 갈등과 안보·외교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이런 식의 대응이 과연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상식 밖의 조치다. 집권 1년도 안 된 상황에서 지지율 30%가 넘은 것을 두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검사 출신의 대통령을 뽑은 데엔 ‘공정’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였는데, 이 또한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이다. 해당 의혹에 대해선 조사, 수사가 일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혐의가 분명하다면 조사를 받고 재판받게 하는 것이 법치국가이며 이것이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점일 거다. 특권을 없애고 동등한 경쟁, 행한 만큼 결실을 얻는 사회를 이룩하게 하는 행정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박 의원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두고 “수사에 당당히 대응하라”고 촉구한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는 “본인께서도 무죄라고 하시니 그렇게 당부드린 것”이라면서도 “이전 당대표들 모두 선당후사(先黨後私)를 행했다. 어떤 위험과 어려움이 있어도 당 보호, 당 이익, 당의 승리를 최우선으로 했다. 당은 죽어도 좋다는 자생당사(自生黨死) 식의 노선을 멀리했던 것처럼 그 태도를 그대로 이어받으며 가면 된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 대표는 박 의원 인터뷰 당일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며 “특권을 바란 바도 없고, 피할 이유도 없으니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 대표가 검찰 출석 당시 당 지도부, 친이재명계 의원들과 동행한 것과 관련해선 “민주당이 방탄 정당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았겠는지, 그거에 맞춰 모든 의사와 행동을 결정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당 안팎으로 사법리스크가 불거질 때일수록 당은 기존에 잘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와 관련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때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 또한 극소수다. 우리 의원, 당원들도 이 사건의 진상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다. 정황으로 볼 때 정적 수사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당 사람들이 법정에 직접 가서 이 대표 문제를 두고 논리적으로 변론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민주당이 해야 할 일, 구체적으로는 민생을 살피고 이와 관련한 법안들을 내서 여론을 주목시키며 사회적 공정을 바로 세우는 일, 민주당의 든든한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안보만 해도 당이 기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고수하는 것인지, 튼튼한 안보를 기반으로 한 또 다른 제3의 길을 모색하려 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다. 용의주도하며 능수능란하게 정책적 비전을 마련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박 의원은 민주당이 야당의 위치에 있는 지금의 시기를 오히려 잘 활용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여당일 때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행정부 관료들이 추진하는 일을 잘 뒷받침하는 것만 해도 바쁘다. 그래서 야당일 때 여당 때 하지 못했던 것, 즉 새로운 프레임이나 시스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기다. 지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대중경제론, 한반도 6자회담 또한 대통령 당선 전 한반도 교차승인론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UN 동시 가입을 제시하면서 구상됐던 거다. 근데 지금의 민주당은 방탄 논란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 국민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는 정치를 선보여야 한다. 그래야 총선 또한 이길 수 있다.”
“‘윤핵관’보다 못한 중대선거구제 대응”
박 의원은 총선 승리를 위한 또 다른 과제로 선거법 개정 등의 ‘정치개혁’을 들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신년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중대선거구제를 두고 “사실상 거대 정당들이 나눠 먹기 하기에 훨씬 편리한 제도”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게 맞다” 등의 의견을 내놓았는데, 더 과감한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민주당이 정치개혁을 얼마나 더 과감하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어야 했다. 최근 브라질에서 발생한 대선 불복 사태나 2년 전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건 모두 극단적인 양극화, 정치적인 진영 논리로 민주주의가 공격당하면서 발생한 것들이다. 국내 사회 또한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며 이를 부추기는 건 다름 아닌 소선거구제도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선 헌법,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데 중대선거구제든, 권역별 비례대표제든,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뭐라도 논의를 진척했어야 한다. 우리는 ‘중대선거구제는 의석 나눠 먹기다’라고만 이야기하고 윤핵관들보다 더 떨떠름한 모습만 보였다.”
박 의원은 정치개혁과 관련해 자신이 기대했던 당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며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1년 만에 정치 소신이 생기셨다니 반갑고 중대선거구제가 중요한 정치개혁의 방향이라 생각하신다니 좋다, 의논해보자’ 등으로 응수하길 바랐다. 그리곤 정개특위에서 우리 나름의 구상으로 밀어붙였어야 했다. 선거법 개정으로 실제 어느 당이 손해 볼지는 아무도 모른다. 민심이 결정할 사안이다. 그 민심을 얻기 위해 우리가 더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해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대연정을 하자고 했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고 했다. 우리 당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예라면 여기에 발맞춰 더 논의를 키웠어야 했다.”
지난해 12월 사면된 김경수 전 지사가 총선을 앞두고 당의 새 구심점이 될 가능성에 대해선 “이미 당 안에 리더의 자격을 지닌 분들이 많다. 그분들과 함께 본인의 역할, 위치를 정할 거라 본다. 본인께서 노력하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그 가능성 또한 넓게 열려 있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박 의원은 최근 당내에서 또다시 거론되고 있는 전당원투표 확대에 대한 의견도 내놓았다. 전당원투표 확대는 전당원투표를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 두는 것을 일컫는데 지난해 8월 전당대회 전후로 박 의원을 비롯한 당내 인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그때도 우려했던 게 당내 강경 목소리만 과대대표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개딸 정당’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그렇게 되면 당심과 민심은 더욱 분리되어 총선 패배를 자초할 거다. 지금의 여당이 무너지고 있는 이유 또한 ‘윤심팔이’에 이어 오는 전당대회를 ‘당원투표 100%’로 진행한다고 밝히면서다. ‘윤심팔이’가 아닌 ‘민심팔이’를 하는 의원이 누가 있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국민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개딸 정당’이 돼선 안 된다”
박 의원은 총선 승리를 위해 올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민주당 당대표 후보로도 나섰고,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경선에도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민주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신뢰받을 수 있는 당이 되도록 당 안팎으로 최선을 다할 거다. 또 개인적으로는 내가 선택받을 수 있도록 실력과 조직을 더 갖추려 한다. 토끼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더 도약하는 한 해가 되겠다.”
그는 삼성생명법의 연내 처리 역시 이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생명법은 기업의 경영·회계 투명성 제고를 목표로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 가치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 총자산의 3%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 통과 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삼성생명은 21조원가량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지난 6년의 의정활동 기간 지속해서 논의를 이끌어간 결과 그 분위기도 달라졌다. 국민의힘 측에서도 논의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올해 국제회계기준(IRFS17)이 새롭게 적용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기업 주가가 비슷한 수준의 외국기업 주가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의 주된 이유가 삼성 등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에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데 따른 결과라고도 본다. 과거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세금 부과,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내부문건 공개, 현대자동차 제작 결함과 관련한 리콜 조치, 사립유치원 회계 투명성 강화 등 모두 제도나 법을 개정해서 이뤄낸 성과다. 삼성생명법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걸 이뤄내겠다는 말보다 이 제도 하나를 바꿔나가는 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