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반란’ 이후 러시아 정세
‘푸틴, 러 안보 보장’ 국민 신뢰 깨져
“바그너 반란은 국가 제도의 붕괴
측근들, 불출마 설득 가능 쪽으로”
정권 내부 탄압·언론 통제는 강화
프리고진은 벨라루스 입국 불투명
‘푸틴, 배신자 가만 안 둘 것’ 관측도
러시아 바그너 용병그룹을 세운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3년에 걸친 철권통치의 종말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방 언론들은 25일(현지시간) “심복에게 뒤통수를 맞은 ‘차르’(황제) 푸틴의 ‘약한 고리’가 드러나며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었다”며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도 부정적으로 점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크렘린과 가까운 콘스탄틴 렘추코프 모스크바 신문 편집자의 말을 인용해 “푸틴과 가까운 이들은 내년 봄 대선에 푸틴의 불출마를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데서 이제 가능하다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렘추코프는 “푸틴이 ‘권력을 잡고 안정성과 안보를 보장해 왔다’는 국민의 생각이 이번 사태로 깨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대선 출마 명목으로 ‘강력한 경제 부흥, 러시아 안보’를 내세워 왔지만, 80%대에 육박하는 국정 지지율 변화 등과 맞물려 상황은 요동칠 수 있다.
2020년 개정된 러시아 헌법은 6년 임기 대통령직의 3연임을 금지한 기존 조항을 백지화했다. 따라서 푸틴이 내년에 당선된다면 2030년까지 통치해 ‘30년 집권’했던 스탈린과 맞먹게 된다.
일간 가디언은 “이번 반란으로 정권 내부를 향한 더 엄격한 탄압과 언론 통제가 가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NBC, CBS 등 4개 방송에 잇달아 출연해 “푸틴의 권력에 전에 없던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국민을 속였다고 비난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등의 교체 여부에 대해서도 “혼란이 며칠, 몇 주간 더 전개될 것”이라며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인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워싱턴포스트(WP)에 “러시아 정부가 무력 사용을 외부에 위탁하면서 국가 스스로 기능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면서 “바그너그룹의 반란은 국가 제도의 붕괴”라고 단언했다.
한편 ‘푸틴의 요리사’에서 돌변해 푸틴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은 프리고진의 행방은 전날 저녁 러 남서부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난 것을 마지막으로 이날까지 묘연한 상태다.
망명을 제안했던 벨라루스와 러시아 당국은 그의 소재에 말을 아꼈다. 벨라루스 측은 이날 “프리고진의 벨라루스 내 소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으며, 그가 입국했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크렘린 대변인도 “프리고진의 반란에 대한 형사소송이 취하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CNN이 프리고진의 외식업 회사 콩코드 매니지먼트에 문의했지만 “프리고진은 모든 이들에게 적절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질문에 대답할 것”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프리고진이 바그너그룹 병력이 배치된 아프리카로 옮겨 갈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푸틴 대통령이 배신자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 이재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