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스페이스 호화 ‘고블린 모드’
새달 18일까지 프레스센터 전시
익숙한 듯 새로운 ‘일상 속의 파격’
아트놈·이윤성·이은·푸네즈 4명
재기 발랄 네오팝 아트 24점 전시
만화 캐릭터로 기존 관습 비틀어
고블린은 중세 시기부터 유럽 전설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로 치면 ‘도깨비’ 정도가 되겠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하는 오크가 고블린의 험악한 형태라고 한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퍼크는 요정과 고블린이 합쳐진 귀여운 홉고블린이다. 1991년에 만들어진 게임 ‘고블린’을 비롯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최근 ‘젤다의 전설’까지 다양한 게임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캐릭터가 고블린이다.
지난해 말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고블린 모드’를 선정했다.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2009년 처음 등장해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코로나19 방역 규제 완화 이후 일상 회귀를 원치 않는 사람을 표현하는 데 인용되면서 사용량이 급격히 늘었다.
이런 것들을 미뤄 보면 홉고블린을 제외한 고블린은 친근한 느낌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지난 19일부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층 아트스페이스 호화에서 열리는 전시 ‘고블린 모드’에 있는 작품들을 보면 익숙하고 귀엽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도 하다. ‘고블린은 어디 있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블린 모드’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함 속의 새로움, 일상 속 파격을 의미하는 만큼 전시작품들이 전시 콘셉트를 잘 살렸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트놈(본명 강현하), 이윤성, 이은, 미구엘 앙헬 푸네즈 등 네오팝 아티스트 4명의 작품 24점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은 어디선가 본 듯한 만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한 장면에 나타나기도 하고 또 다른 만화 속 주인공들과 함께 나타나는 등 그야말로 ‘시각적 하이브리드’를 시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트놈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캐릭터와 그림문자로 불리는 픽토그램을 결합해 고전 명화들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보티첼리의 템페라화 ‘비너스의 탄생’을 재해석한 ‘Birth of Venus’는 명품의 로고를 배경으로 스마일과 엄지척 문자 사이에 비너스를 배치해 고전의 딱딱한 권위주의와 현대 자본주의를 비튼 작품이다.
이윤성의 작품은 서양 문명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오랜 경전인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야기를 일본 만화(망가) 형식으로 바꾼 회화와 조각을 선보인다. 페르세우스에게 머리가 잘린 메두사를 그린 그림도 제목을 보지 않으면 ‘시크릿 쥬쥬’나 일본 애니메이션 속 여자 캐릭터의 얼굴을 확대해 그린 것처럼 느껴진다.
이은은 흔히 ‘움짤’(움직이는 사진)이라고 부르는 짧은 동영상 속 움직임의 순간을 포착한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이 작가는 도널드 덕, 곰돌이 같은 동영상 속 추억의 디즈니 캐릭터들을 캔버스로 옮겨 왔다. 초당 24프레임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평면에 표현함으로써 가상과 현실의 틈새를 좁히기 위한 시도를 한 것이다.
푸네즈도 도라에몽 같은 친숙한 만화 캐릭터를 해체하고 재조합해 패턴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온전치 못한 형태로 결합하거나 같은 모양이 계속 반복되도록 해 무한 복제되는 디지털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만화적 캐릭터들도 많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전시는 오는 6월 18일까지.
유용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