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 500만원 절차도 까다로워
6년간 입소자 1245명 중 61명 수령
‘14년째 500만원’ 자립지원금 받으려면
보호시설 반년 거주·자립 능력 입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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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집을 나와 수도권의 한 피해자 보호시설에서 8개월간 지냈던 10대 A양. 정신적 충격과 어린 나이 탓에 일자리를 구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 시설을 나오려 했던 A양은 또 한 번 절망했다. 2022년 당시 ‘시설 생활 1년’을 채우지 못해 국가가 지급하는 지원금 500만원도 받지 못해서다. 고시원이나 반지하 보증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지만,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졌다. 당장 머물 곳을 찾지 못한 A양은 가해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최근 밀양 성폭행 사건이 재점화되며 피해자에 대한 보호나 지원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보호시설 생활을 마친 10대 성폭력 피해자를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유일한 지원으로 알려진 ‘퇴소 자립지원금’도 불과 1년에 10명 정도만 지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15일 서울신문이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보호시설을 나와 자립하려는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퇴소 자립지원금’은 2019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5년 6개월간 61명만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국의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36곳에 입소한 피해자가 1245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의 4.9% 정도만 시설을 나갈 때 지원금을 받았다는 얘기다. 강원, 충남, 세종, 대구의 경우 같은 기간 지원금이 지급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퇴소자립지원금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호시설을 퇴소할 때 자립에 필요한 주거·생활·교육 등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2011년 도입됐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는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아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만든 제도다.
하지만 까다로운 신청 자격과 모호한 심사 기준으로 실제 지원금을 받는 피해자들은 많지 않다.
지원금을 신청하려면 성폭력 피해자가 미성년일 때 시설에 입소해 6개월간 생활한 뒤 19세 이후 퇴소해야 한다. 지난해까지 ‘시설 생활 1년’이었던 신청 자격 기준이 올해부터 6개월로 바뀌긴 했지만, 지원금을 받기 어려운 건 크게 다르지 않다. 성폭력 후유증으로 공동체 생활을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이 ‘6개월 시설 생활’, ‘성인이 된 이후 퇴소’와 같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지 못하면 아예 지원금을 신청할 수 없다. 보호시설을 운영하는 조은희 원장은 “성인이 되기 전 퇴소해 자립하려는 피해자는 아예 도울 수 없는 구조”라면서 “시설 생활을 6개월 이상 해야 한다는 규정도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욱이 올해부터 피해자가 지원금을 신청하면 보호시설장이 시설 소재 시·군·구청장에게 지급 대상자를 추천하고 이후 ‘선정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때 자립 능력이 없다고 보면 지원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자립 능력은 피해자가 제출한 자립 계획서를 보고 판단하지만, 위원회가 도입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호시설 현장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지원금의 지급 기준을 완화하고 지급 액수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수연 변호사는 “금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회복이 이뤄질 수 있다. 지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미성년자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면 삶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며 “이런 피해자들이 제대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보호시설 퇴소 이후의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송현주 기자
2024-07-16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