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감사원, 설계 ‘맥’ 짚자 막힌 SOC ‘혈’ 뚫렸다

첫 삽 못 뜬 대전북연결선… ‘SOC 사각지대’ 감사로 철로 잇다

사업 초기 단계 점검… 2022년 도입
‘사각’ 없애 부실착공·예산낭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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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철도공단이 내년 개통을 목표로 2021년 9월 사업계획을 내놓은 경부고속철도 대전북연결선(5.96㎞) 건설사업이 아직도 첫 삽을 뜨지 못했다. 경부고속철도 대전역 진출입 방식을 개선하는 공사인데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반대가 격심했다. 철도공단은 공사비 증액을 고려해 기존 선로를 2개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코레일은 선로를 줄이면 열차 운행 횟수가 줄어든다고 맞섰다. 두 기관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사업계획은 공전했다.

교착 상태를 중재한 건 감사원이었다. 감사원은 철도 건설사업관리 실태 감사 중 이러한 상황을 파악했다. 지난해 4~6월 수차례 자문회의와 기술조사 등을 진행한 뒤 기존대로 4개 선로를 운행하는 대신 공사비 증액이 없도록 철로의 최소 곡선, 기울기, 터널 길이를 변경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두 기관과 국토교통부는 감사원이 제시한 대안을 수용키로 하고 내년 3월까지 공사를 재설계하기로 했다. 사업비는 원안보다 600억원 줄어든 3100억여원대로 예상된다.

24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감사원은 기존의 직무감찰과 회계감사 기능을 넘어 난항하는 공공 사업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22년부터 새로 도입한 사회기반시설(SOC) 감사체계에 따라서다. 기존 감사원은 예산 낭비나 부실시공 이슈가 있을 때 점검하는 사후 감사를 주로 해 왔다. 그러다 최재해 감사원장 취임 이후 사업비 1조원 이상의 대규모 SOC 사업은 계획과 설계, 시공 등 사업 단계별로 문제를 점검하는 감사체계를 도입했다. 

시공 이후 단계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뒤늦게 해결하려면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초기 단계부터 정밀 점검을 하기로 한 것이다. 감사원은 영국 감사원(NAO) 모델을 참고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의 시각으로 설계 단계부터 점검하자 사업 추진 기관에서는 보지 못한 ‘구멍’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추후 막대한 비용과 부작용이 우려되는 부분이 사전에 발견된 것이다.

국토부는 경부·호남 고속철도가 함께 쓰는 평택~오송 구간의 선로 용량을 190회에서 380회로 2배 늘리는 3조 2000억원 규모의 ‘평택~오송 2복선화’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오송역은 2010년 개통 때부터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설 때 필요한 과주 여유거리가 부족하게 설계·시공돼 10개 선로 중 2개가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국토부는 이런 사정도 고려하지 않은 채 선로 용량을 2배 늘리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감사원은 철도건설실태 감사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를 발견했다. 감사원은 과주 여유거리 부족을 해소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하면 열차 운행 횟수가 오히려 줄어 3조원이 넘는 공사비가 낭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열차 운행상 중대 정보를 알지 못한 채 부실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요구하고 오송역의 과주 여유거리 부족 문제를 해소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 배선 설계 등을 다시 할 것을 통보하는 내용의 감사결과 보고서를 지난 19일 발표했다.

이에 철도공단은 “‘오송정거장 과주 여유거리 확보 등을 위한 해소방안 용역’을 통해 앞으로 개통에 따라 늘어나는 선로용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설계 단계부터 본격적인 사업 점검을 하면서 피감기관들에 사전컨설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독려하고 있기도 하다.

감사원 사전컨설팅은 명확하지 않은 법령·규제 등으로 공공기관 등이 쉽게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감사원이 먼저 유권해석 등의 의견을 제시하는 제도다.

최근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연구개발(R&D)센터 건립이 무산될 뻔한 위기도 감사원의 사전컨설팅으로 풀렸다.

AMAT R&D센터는 지난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 중 하나로, AMAT는 지난해 8월 경기 오산 가장동 일대 1만 8000여㎡에 대한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로 지난해 11월 국토부가 오산세교3 공공택지 후보지를 발표하며 이 땅을 포함시켰다. 급기야 AMAT가 투자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감사원은 지난 5월 사전컨설팅을 통해 국토부가 해당 부지를 공공택지지구에서 제외하고 재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새로운 SOC 감사체계에 따라 관리대상 SOC사업 선정 및 모니터링, 건설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기술지원단 조직·운용, 자체 감사기구와의 합동 감사 등으로 전문성을 보완해 그간 사각지대였던 설계 단계부터 감사를 내실 있게 진행하게 됐다”며 “여기에 사전컨설팅 활성화를 더해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미리 막고, 막혀 있던 곳은 뚫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허백윤 기자

2024-11-2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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