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주변 수 ㎞ 까지 뒤덮은 연기
“전쟁 난 줄” 폭발음 계속 들려
생존자도 주저앉아 울부짖어
쇳조각, 인근 공장까지 날아와
점점 꺼져가는 실낱같은 희망
큰불 잡힌 후 시신 20여구 발견
실종자 대부분이 일용직 외국인
인적 사항·소재지 파악에도 난항
“어떡해… 우리 남편 좀 찾아 주세요.”
24일 오후 3시 30분쯤 20여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친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 공장 아리셀 화재 현장에서 만난 40대 여성 A씨는 “뉴스를 보고 남편 회사 이름이 보여 연락을 해 봤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 서울에서 무작정 택시를 타고 왔다”면서 “회사(아리셀)에서는 연락도 오지 않았고, 본사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아 무작정 올 수밖에 없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 31분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배터리 셀 1개에 불이 붙으며 시작된 화재는 오후 3시 30분 현재까지 불길이 완전히 잡히지 않고 5시간 넘게 지속됐다. 화재 발생 1시간 30여분 뒤인 정오쯤 아리셀 공장 정문 주변에서 마주친 생존자 B씨는 사고 현장을 바라보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연신 “어떡해, 어떡하냐”고 울부짖기만 했다.
급히 대피해서인지 평상복 차림에 슬리퍼만 신고 있던 B씨의 발목 부위 곳곳에 찰과상이 보였다. 동료 직원으로 보이는 한 50대 남성은 B씨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했다.이날 오후 화재 현장은 폭격을 맞은 전장에 가까웠다. 불이 난 공장 외벽은 시커멓게 그을렸고, 열기를 못 이긴 자재들은 흉측하게 녹아내렸다. 화재 현장에서는 ‘펑’ 하는 폭음이 이어졌다. 화재 당시 공장 내부에서 자재가 폭발하며 튀어나온 쇳조각들이 도로 곳곳에서 발견됐다.
공장에서 발생한 연기는 반경 수㎞ 내의 공장과 주택 등을 모조리 뒤덮어 화재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한 치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인근 공장 노동자들과 경찰 등은 저마다 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연기 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스리랑카 노동자 라이르(24)는 “오전 10시 55분쯤 큰 폭발음이 들렸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며 “맞은편 숙소에 머물고 있었는데 전쟁이 난 줄 알고 너무 놀라 나와 보니 연기가 자욱했다”고 말했다.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 자야(37)도 “아침에 큰불이 난 것 같아 동료들과 잠시 사고 지점에 나와 봤다”며 “공장들이 밀집해 있어 항상 안전이 염려됐는데 오늘 같은 사고가 나 너무 당황스럽고 떨린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인근 회사 소속 이모(50)씨는 “우리 직원 83명은 불이 나자마자 일단 대피했다”며 “금속이 폭발하는 화재이다 보니 잔해가 우리 공장까지 넘어와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 일대가 다 화학제품 제조 회사인 만큼 아무래도 추가 화재가 걱정돼 오늘 공장 작업은 멈췄다”고 덧붙였다.경기 화성소방서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현재까지 파악된 실종자는 21명”이라고 밝혔다. 소방대원들은 이날 오후 3시쯤 불이 난 아리셀 공장 3동 내부로 진입해 수색 작전을 시작했다. 소방당국은 불길이 잦아든 데다 건물 안전진단을 마친 상태여서 구조대 투입을 결정했다. 내부 수색 결과 시신 20구 이상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실종자로 알려졌던 이들로 추정된다.
아리셀 공장 3동에 있던 직원 중 1층에 있던 노동자들은 모두 대피했으나 2층의 노동자 중 다수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실종자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했는데 모두 이(공장) 부근으로 나오고 있다”며 “실종자 21명은 2층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배터리 화재 특성상 물로 진압할 수 없어 모래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김진영 화성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브리핑에서 “사고가 난 곳은 리튬배터리를 제조해 완제품을 납품하는 회사인데 불이 난 3동 2층에 원통형 리튬배터리 3만 5000여개가 있어 폭발이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리튬배터리 화재는 물이 아닌 모래로 꺼야 하지만 폭발이 계속돼 내부 진입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오후 1시 검은 연기가 어느 정도 잡히는가 싶더니 1시간 만인 오후 2시쯤 또다시 검은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는 등 쉽사리 완전 진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큰 불길이 잡힌 건 이날 오후 3시 10분쯤으로 화재가 발생한 지 4시간 40여분 만이다.
소방과 경찰 등은 실종자 인적 사항을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실종자 21명 중 약 20명이 일용직 외국인 근로자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다 보니 당사자 외 가족 등을 통해 소재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