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대상자 지목·추측 근거 없어”
남편 내연녀 간 대화 녹음해 법정 제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는 선고유예
남편의 내연녀가 운영하는 가게 근처에서 ‘불륜을 하지 맙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여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 1부(이진재)부장판사는 명예훼손,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40대 A씨에게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과 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선고를 유예했다.
A씨는 2021년 10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남편의 내연녀 B씨가 운영하는 경남 한 가게 앞 거리에서 ‘불륜을 하지 맙시다’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시위 함으로써,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거리에서 B씨의 명예를 훼손하고, 손님들의 위화감을 조성해 B씨의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켓 내용 만으로는 불륜을 한 사람이 B씨라고 단정할 수 없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켓에는 불륜 내용이나 대상자가 B씨라고 추측 할만한 어떤 문구도 적혀있지 않았다. 피켓을 들었던 장소가 B씨의 영업장 인근 전신주 옆 노상이고, 영업장이 위치한 건물에는 B씨 외에도 다수가 상주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켓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명예의 주체가 B씨로 특정됐거나 B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구체적 사실이 드러났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업무 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A씨가 가게 출입문에서 다소 떨어진 노상에 피켓을 들고 앉아 있었을 뿐 출입자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확성기 등을 사용해 소음을 일으키지도 않은 점, 다른 사람과 합세하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은 점 등에 비추어보면 단지 1인 시위를 한 것만으로 영업장 운영을 방해할 정도의 위력이 행사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A씨의 상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선고를 유예했다. A씨는 2021년 10월 부산의 한 사무실에 소형 녹음기를 설치해 남편과 B씨의 통화 내용을 녹음했고, 남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증거자료로 제출해 공개했다. 또 B씨의 가게에 찾아가 불륜 사실을 인정하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하던 중 시비가 붙어 B씨에게 전치 2주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재판부는 “귀책 사유가 누구에게 있든, A씨가 B씨에게 상해를 가했고, 위법하게 녹음한 내용을 소송의 증거자료로 제출한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는 않다. 다만,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배우자와 B씨 사이의 부정행위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미성년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부산 정철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