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사망’ 나발니 장례식 엄수…의문사 보름만
지지자 수천명 집결…“살인자 푸틴”, “전쟁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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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장례식이 거행된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 앞에 추모객이 집결해 있다. 2024.3.1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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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장례식이 거행된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 앞에 집결한 추모객이 “전쟁 반대”, “군인을 집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3.1 넥스타 텔레그램
옥중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1일(현지시간) 지지자 수천 명의 추모 속에 영면에 들었다. 러시아 전역에서 모인 지지자들은 나발니의 장례식에서 “전쟁 반대”와 “살인자 푸틴” 구호를 연신 외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나발니의 장례식은 그가 생전 살았던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엄수됐다. 삼엄한 경찰의 감시 속에서도 추모객들은 질서 정연하게 나발니의 장례식을 기다렸다.
애초 장례식이 지연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지만, 나발니의 관은 예정 시간인 오후 2시쯤 검은색 영구차에 실려 교회 입구에 도착했다. 영구차가 들어서자 지지자들은 “나발니! 나발니!”를 연호했다.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교회 안에서 진행된 추도식 영상과 사진들이 공개됐다.
검은 정장을 입고 눈을 감은 채 관 속에 누운 나발니는 창백하지만 편안한 표정이었다. 위에는 붉은색과 흰색 꽃이 덮였다.
나발니의 어머니인 류드밀라 나발나야는 정교회 목사의 안내에 따라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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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관이 옮겨지고 있다. 2024.3.1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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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장례식이 끝난 후 추모객이 나발니 무덤이 있는 보리솝스코예 공동묘지에 집결해 있다. 2024.3.1 로이터 연합뉴스
약 20분간의 교회 장례식이 끝난 뒤 나발니의 관은 다시 영구차에 실려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보리솝스코예 공동묘지로 향했다.
다시 관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나발니”를 외치며 함께 붉은 꽃을 들고 묘지 쪽으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쳐 놓은 철제 울타리가 무너지는 일도 있었다.
나발니가 땅에 묻히기 전 아버지와 어머니가 몸을 굽혀 아들의 이마에 키스했으며, 나발니의 관은 프랭스 시내트라의 노래 ‘마이웨이’ 음악을 배경으로 땅속으로 들어갔다.
또 나발니가 가장 좋아한 영화였던 터미네이터2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며 엄지를 치켜들고 “다시 돌아오겠다(I will be back)”고 말할 때 나온 음악도 흘렀다.
추모객은 묘지에서 나발니에게 직접 작별 인사를 전할 수도 있었다. 해가 진 이후에도 긴 줄 탓에 묘지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은 나발니 사진과 꽃 등으로 자체 기념비를 만들어 애도를 표했다.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도 25만명 이상이 장례식 현장 중계 영상을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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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을 마친 후 보리솝스코예 공동묘지로 향하는 추모객 행렬. 2024.3.1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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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마친 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관을 실은 영구차가 보리솝스코예 공동묘지로 향하자 추모객이 “나발니”를 외치고 있다. 2024.3.1 AP 연합뉴스
전날부터 근처에서 묵거나 휴가를 내고 찾아온 추모객 행렬은 이날 교회 전체를 둘러싸고 수㎞ 이어졌다. 외신들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저항의 뜻을 보여주는 최대 규모 인원이 모인 것으로 추정했다.
추모객들은 교회 주변이나 묘지로 향하는 길에서 “푸틴이 죽였다”, “살인자 푸틴”, “러시아는 자유로워질 것”, “푸틴 없는 러시아”, “전쟁 반대”, “우리 아들들(군인)을 집으로” 등 각종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한 여성 추모객은 러시아 독립언론 소타(SOTA)과의 인터뷰에서 “나발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라를 희생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저격했다.
이어 “우리는 나발니의 유지를 받들 것이다. 그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 여기에 오는 게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더이상 두렵지 않다. 이미 여러 고통과 분노가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하며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올바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남성 추모객은 연합뉴스에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 나라들과 러시아는 다르다”며 “러시아를 바꾸고 싶어 한 나발니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추모객과 경찰 사이 대규모 충돌은 없었으나, 인권단체 OVD-인포는 장례식이 열린 모스크바에서 6명을 포함해 러시아 전역에서 최소 67명이 이날 체포돼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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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알렉세이 나발니 장례식을 앞둔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 앞에서 추모객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4.3.1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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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보리솝스코예 공동묘지에 알렉세이 나발니 추모객이 모이고 있다. 전날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에서는 나발니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2024.3.2 AP 연합뉴스
나발니는 지난달 16일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제3 교도소에서 47세 나이로 갑작스레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다음 날인 17일 교도소 인근 마을로 가서 아들의 시신을 달라고 호소한 끝에 8일 만인 24일 시신을 인계받았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혈전으로 인해 자연사했다고 결론냈으나, 유족 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암살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나발니의 사인이 과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수법과 유사하다며, 강추위에 내몬 뒤 가슴팍 심장부를 주먹으로 가격해 암살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나발니의 장례식날 크렘린궁은 나발니에 대한 평가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나발니 장례식을 계기로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허가되지 않은 모든 집회는 위법”이라고 경고했다.
또 세계 주요 언론은 나발니 장례식을 헤드라인으로 다뤘지만,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이 소식을 짧게 전하면서 나발니가 극단주의, 사기 등 여러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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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장례식이 거행된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 앞에서 한 추모객이 독립매체 소티(SOTA)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여성은 인터뷰에서 “나발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라를 희생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저격했다. 2024.3.1 소타
1일(현지시간)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장례식이 거행된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의 우톨리 모야 페찰리(내 슬픔을 위로하소서) 교회 앞에 추모객이 집결해 있다. 2024.3.1 텔레그램
한편 나발니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푸틴 대통령을 공개 비판하며 러시아 야권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며칠 전에는 유럽의회에 참석, EU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체포 우려로 국외에 체류 중인 율리아와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 다리아 등 자녀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SNS를 통해 추모를 이어갔다.
나발나야는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늘에 있는 당신이 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할게요”라는 글을 올렸다.
권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