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어도 정쟁 무한 반복
당정, 민생고 외면 적폐 타령만
‘포용과 책임’ 큰 정치 보여줘야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도시이다. 농업에 유리한 지역에 도시는 처음 형성되었고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들며 도시의 규모는 커지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도시는 혼잡해졌고, 도시 거주민이 이동에 사용하는 노력과 시간을 줄이는 일은 근대도시가 풀어야 하는 가장 큰 숙제였다.
자동차 보급과 도로 확장만으로 풀기 어려운 이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한 교통수단이 바로 지하철이다. 근대 국가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도 이미 교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도 서울에 1974년 지하철 1호선을 개통하며 지하철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서울의 경우 이미 9호선까지 개통되었고, 일 평균 700여만명이 이용한다고 한다. 지하철 노선은 대부분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혹은 대각선의 형태로 나 있으며 환승역을 통해 노선끼리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하철역 노선도 가운데 하나 특이한 노선이 있다. 바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이다. 2호선을 제외한 모든 노선은 일직선으로 뻗어 있으나 2호선만 순환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길쭉한 타원 형태로 한강을 넘나들고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며 서울을 한 바퀴 돌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성수역과 신도림역이 기준점이 되긴 하나 계속해서 열차들은 순환 형태로 운행한다. 직선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측면도 있지만 거의 모든 노선과 연결되어 가장 많은 승객을 운반하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종착역 없이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 노선을 살펴보면 우리네 삶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주어진 시간을 계속해서 맞이하며 삶의 여정을 이어간다. 일상을 보더라도 아침에 출근하며 집을 나서고, 온종일 격무에 시달리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와 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 아침 또다시 생계를 위해 집을 나선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나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상의 반복은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인생만 지하철 2호선처럼 돌고 도는 게 아니다. 정치 역시 비슷하다. 안타까운 점은 아름다운 스토리는 반복되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잘못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2022년 3월14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원칙은 지키되 공약에 집착하지 않는 대통령’이란 글을 본란에 적었다. 지난 대통령들의 과거를 돌아보니 후보 시절 국정을 파악하지 못한 채, 지지 세력만 바라보는 공약을 제시하고 당선 후 이에 집착하다 오히려 국정에 실패하는 모습이 반복되었기에 윤 대통령만은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랐다.
하지만 공약에 대한 집착은 정권이 바뀌어도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이후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을 실현한다는 명목 아래 최저임금 인상 등 잘못된 정책에 집착하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자기모순에 빠지며 국정 동력을 상실하고 끝내 정권을 내줬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며 수사를 통한 정의 실현에 집착하였다. 그러다 보니 검찰의, 검찰에 의해 주도되는 정치 형국이 국정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논란의 진실을 밝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산적한 민생 관련 국정과제의 추진은 사정 정국에 묻히고 있다. 공약에 집착하는 모습은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되고 있다.
필자는 2022년 10월11일 본란에 실린 ‘포용적 다양성이 필요한 우리 정치’란 글에서 정권 바뀔 때마다 지난 정책을 정쟁화하는 모습을 비판하고 상대 진영의 정책이 가진 선한 의도는 받아들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 정권이 이전 정권과 차별성을 가지려는 의도야 이해하지만,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속하여 적폐(積弊) 탓만 하면 정쟁만 무한 반복되기에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적은 글이었다.
가스요금 인상 대란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번 달 갑자기 오른 가스값 고지서에 많은 국민은 당황하며 역대급 한파를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문재인정부가 가스값을 적게 올려 현 정부가 모든 부담을 떠안았다고 적폐 타령만 하고 있다. 설령 전임 정부가 탈원전정책의 일환으로 가스값 인상에 소극적이었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인상임을 인정하고 이러한 상황을 예견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정권을 잡은 지 10개월이 되었는데 여전히 이전 정권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적폐 척결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은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되고 있다.
매일 서울을 한 바퀴씩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의 모습은 반복되는 우리 삶과 비슷한 면이 많다. 그러나 정치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정치인도 인간이기에 비슷한 오류를 범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굳이 정권을 교체하고 새로운 정치인이 등장할 필요가 없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전임 정권과 같은 행태를 반복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차별된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은 정권 교체를 통해 희망을 품고 현세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2호선을 타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정치는 다른 노선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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