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경제학자 A 씨는 그 근거로 대뜸 한국은행의 최근 통계 지표 하나를 내밀었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집은 전체 소득의 평균 60%를 빚 원리금을 갚는 데 쓴다는 내용이었다. A 씨는 이 가구들이 대출 상환을 하고 나면 거의 최저생계비만 남는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경제의 한 축인 민간소비가 어떤 충격을 받을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경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서브프라임 사태에 준하는 현상이 한국에도 불어닥칠 수 있다고 했다.
평소 워낙 비관적인 전망으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이번엔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집값과 금리, 소비의 함수 관계가 명확한 우리 경제에서 거의 모든 시그널이 침체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의 90% 이상은 새해에도 집값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자산 가격의 하락은 가계의 소비 여력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집을 사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고금리, 저성장 시대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올해 기록적인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경제계에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물론이고, 항상 ‘희망이 듬뿍 섞인’ 전망을 내놓는 정부마저 1.6%라는 비교적 ‘담백한’ 수치를 제시했다. 한국 경제 역사상 성장률이 2%에 미치지 못한 적은 외환위기, 오일쇼크, 코로나 등 심각한 경제 위기가 찾아왔을 때 말고는 없었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상황은 더 심각하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0%대,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경고하고 있다. 별다른 외부 충격이 없었는데도 성장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기본 실력이 이제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사실 이런 성적표는 우리에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에도 연간 성장률은 원래 1%대가 유력했다. 통계를 유난히 중시했던 당시 정부가 막판에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겨우 2.0%를 맞췄다. 그해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1.5%포인트로 4분의 3을 차지했다. 가만히 놔뒀으면 사실상 성장의 맥이 끊겼을 것을 세금을 퍼부으면서 숫자를 억지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런 일들이 수시로 생기는 것만 봐도 우리에겐 잠깐의 성장 쇼크가 아닌 일본식 상시 불황이 이미 도래한 것인지 모른다. 이대로는 20여 년 뒤 경제 규모가 나이지리아에 추월당한다는 골드만삭스의 경고도 그다지 허튼소리가 아니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정부는 올해 대규모 ‘빅배스’(부실 털어내기)를 할 모양이다. 고금리 기조 속에 “빚내서 경기부양은 안 한다”고 일찌감치 선언했고, 전기·가스요금의 정상화, 더 내고 덜 받는 식의 연금개혁도 추진한다. 모두가 당장에 필요하고 해묵은 과제이긴 하지만 그에 비해 성장을 촉진하고 기업가의 야성을 깨우는 노력은 미진하다는 평가가 많다. 상처가 나면 환부를 깨끗이 닦아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새살이 돋아나도록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다. 1%대 성장률의 의미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