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총액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은 올해부터 양도제한 조건부 주식(RSU)의 지급거래 현황을 연 1회 공개해야 한다. RSU가 총수 일가의 지분율 확대와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 강화에 나선 것이다. 재계가 “과도한 규제”라며 즉각 반발했다. 앞서 공정위와 재계는 사익편취 관여 총수 일가 고발 지침 개정,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 입법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고발지침 개정은 무산됐고, 플랫폼법 입법은 표류 중이다.
공정위는 16일 대규모기업집단 공시 매뉴얼을 이처럼 개정했다고 밝혔다. 기업집단 현황공시 항목 중 ‘특수관계인에 대한 유가증권 거래현황’에 RSU의 주식 지급거래 약정 내용을 기재하는 양식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전년도 총수 일가·임원 등과 주식 지급거래 약정을 체결한 내용을 올해부터 공시해야 한다. 공시 정보는 부여일, 약정 유형, 주식 종류, 수량 등이다. RSU가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다. 주식 지급거래 약정 내용이 공시되면 시장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변동 내역과 향후 변동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지연·허위 공시 땐 과태료가 부과된다.
RSU는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임직원에게 부여하는 성과급 제도다. 상법상 대주주에게 지급할 수 없는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과 달리, RSU는 지급 대상·조건·한도 제약이 없다. 스톡옵션은 약정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인 반면 RSU는 자사주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일정 기간 팔 수 없게 약정을 건다. 즉 스톡옵션은 주가가 약정보다 낮으면 의미가 없지만, RSU는 약정 기간이 지나면 재산적 가치가 생긴다.
애초 실리콘밸리에서 연구·기술 인력의 유출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국내 재벌들이 특수관계인에게 성과급 대신 지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한화가 2020년 처음 도입했고 네이버와 CJ E&M, 두산, 쿠팡, 토스, 위메프, 크래프톤도 임직원에게 RSU를 지급하고 있다. LS그룹은 지난해 구자은 회장에게 성과급 대신 지급 시점이 2026년인 RSU 2만 7340주를 줬으나 올해 주주총회에서 폐지했다. 오너 편법 승계 등 오해를 살 수 있어서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지난해 한화 16만 6004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6만 5002주, 한화솔루션 4만 8101주를 10년 뒤에 받는 RSU를 체결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RSU 공시는 금융감독원 공시와 중복돼 기업 부담만 커지고, RSU 약정 내역이 유의미한 정보도 아니며, 주가 변동과 성과 달성 여부에 따라 실제 지급되는 주식 수와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면서 “경영 목표 및 인센티브 제도에 대한 공시를 의무화하는 건 과도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