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플랫폼법 9개월 만에 무산
업계 반발에 공정거래법 개정 선회
사업자 사전 지정→사후 추정 후퇴
점유율 60% 이상 ‘지배적 플랫폼’
네이버·카카오·구글 등 포함 예상
일각선 해외 플랫폼과 역차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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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홍 국민의힘 정무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메프 사태 재발 방지 입법방향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민국 의원, 윤 위원장, 김상훈 정책위의장,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홍윤기 기자
소수의 공룡 플랫폼을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해 각종 갑질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던 정부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입법이 9개월 만에 사실상 백지화됐다. 대신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거대 플랫폼의 반칙을 막겠다고 밝혔다. 특히 논란이 됐던 지배적 플랫폼에 대한 ‘사전 지정제’는 ‘사후 추정제’로 급선회했다. 이에 따라 쿠팡과 배달의민족(배민)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들은 규제를 피해 갈 가능성이 커졌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을 위한 입법 방향’을 발표했다. 플랫폼법 제정이 기존 공정거래법과 중복된 법안이라는 재계 등의 지적을 수용해 플랫폼 독과점 규제를 강화하는 조항을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담아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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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적 플랫폼에 대한 ‘사전 지정’ 방침은 ‘사후 추정’으로 변경했다. 플랫폼의 위법 행위가 일어나면 그때 실태조사를 통해 ‘지배적 플랫폼’에 해당하는지를 따져 제재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한 위원장은 “업계·전문가·관계부처 의견을 종합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공정위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MA)처럼 규제 대상을 사전 지정하겠다고 했다가 업계의 반발을 샀다. 플랫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공정위가 사전 지정제를 통해 달성하려던 ‘신속한 사건 처리’ 동력도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공정위는 지배적 플랫폼의 요건을 ▲시장점유율 60% 이상 ▲이용자 수 1000만명 이상 ▲플랫폼 관련 연 매출액 4조원 이상 등으로 정했다. 세 가지를 동시 충족해야 한다. 한 위원장은 “스타트업의 규제 부담 우려를 고려해 연간 매출액 4조원 미만 플랫폼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기준에 부합하는 플랫폼으로는 네이버(검색), 카카오(카카오톡), 구글(유튜브·구글플레이), 애플(iOS), 메타(인스타그램) 등 5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쿠팡의 경우 연 매출액은 26조원에 이르지만 전자상거래 시장점유율이 20%에 불과하고 배달의민족은 시장점유율은 60% 수준이지만 연 매출액이 3조 4000억원이어서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플랫폼 규제 분야는 ‘중개·검색·동영상·소셜미디어(SNS)·운영체제(OS)·광고’ 등 6개 서비스로 한정했다. 규제할 위법 행위로는 ‘자사 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제한·최혜대우 요구’ 등 기존에 플랫폼법 입법과정에서 밝힌 4대 반칙 행위가 유지됐다. 플랫폼에 부과되는 과징금은 기존 관련 매출액의 6%에서 8%로 2% 포인트 상향된다.
일각에선 해외 플랫폼과의 ‘역차별’ 우려도 제기된다. 해외에 본사를 둔 플랫폼들이 자료 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하지 않는 경우 실효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해외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고 제재를 끌어낸 전례가 이미 많다”고 반박했다.
세종 이영준 기자
2024-09-10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