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에 ‘햇살’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드라마에 열광…현실의 장애인엔 냉담
‘우 투더 영 투더 우!’
안으로 구부린 양팔을 위아래로 번갈아 휘저으며 불러야 제맛인 이름이 있다. ‘이상한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엉거주춤한 걸음걸이의 단발머리 여성. 우영우(사진)는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주인공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로 서울 강남의 대형 로펌에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지난여름을 온통 ‘우영우’에 빠져 보냈다.
경향신문은 가상인물인 우영우를 202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올 한 해 우영우만큼 다양한 장소와 맥락에서 호명된 실제 인물을 찾기 어렵다. <우영우>는 신드롬이었다. 신생 채널에서 스타 배우 없이 출발한 드라마는 17.5%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7일 구글이 발표한 ‘2022년 한국 트렌드 검색어 순위’에서 <우영우>는 전 지구적 과제인 ‘기후변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경향신문에서 ‘우영우’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거나 다룬 칼럼이 33건(기사 제외)에 달했다.
우영우는 드라마 바깥에서도 이야깃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물론 장애인 관련 논의가 가장 활발했다. 우영우와 ‘멘토’ 정명석 변호사를 통해 직장 내 장애인·비장애인 간 모범적 관계를 제시했다. 우영우가 동료 이준호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는 장애인·비장애인 간 사랑에서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물었다. <우영우>에도 장애인을 ‘무해하고 유익’하게만 그려 ‘장애인은 착하고 쓸모를 입증해야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대중문화가 장애(인)를 재현할 때 지켜야 할 윤리가 무엇인가를 광범위하게 이야기하는 계기가 됐다.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받던 장애는 <우영우>와 함께 담론장 한가운데 진입했다.
초반부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직장 적응기를 보여주던 드라마는 중반부 이후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면서 보다 깊고 넓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성소수자의 사랑할 권리, 아동의 행복권, 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동물권 등 예민한 소재를 섬세하게 풀어갔다. 우영우의 동료 변호사인 권민우를 통해서는 한국 사회 주요 화두인 ‘능력주의’와 ‘공정’에 대해 물었다.
우영우에게 쏟아진 찬사는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현실의 장애인들, 그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과 선명하게 대비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1년 내내 교육권·노동권·이동권 보장에 필요한 정부 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였다.
전장연이 직면한 것은 거센 비판이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들의 시위 방식이 “비문명”이라고 했다. 경찰은 전장연 활동가 11명을 집회·시위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운행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우영우는 해피엔드와 함께 우리 곁을 떠났다. 현실의 장애인들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지난 24일 전장연은 한시적으로 중단했던 지하철 탑승 시위를 내달 2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단체가 그간 요구해온 장애인 권리 예산 중 106억원(0.8%)만 반영된 정부 예산안이 같은 날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전장연과 대립각을 세워온 오세훈 서울시장은 “더 이상 관용은 없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우영우>는 판타지라고 했다. 우영우가 천재적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 우선 그렇지만, 주변인들의 면면이 비현실적으로 훌륭하다는 의미에서였다. 우영우는 그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그가 겪는 차별과 불합리를 넘기지 않고 돕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 없이 우영우 홀로 훌륭한 변호사로 성장할 순 없었을 것이다. 우영우의 표현을 빌리면 ‘봄날의 햇살’ 같은 이들이다.
우영우가 떠난 세상에도 ‘봄날의 햇살’이 비치는 날은 올까. 판타지를 현실로 바꾸는 것은 드라마 밖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2022년 우영우 덕분에 나아간 한 발짝은 이들 덕에 두 발짝, 세 발짝으로 옮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