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시도 회장단 회의서 결정
임현택 “정원 오히려 축소해야
의사에 나쁜 프레임… 낙선운동”
‘선’ 넘은 정치 발언… 해법 더 꼬여
당정 엇박자에 의료계도 제각각
“많은 의사들이 강경으로 돌아서”
전의교협, 정부 “대화”에도 침묵
의료대란 수개월 이상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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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들이 1일부터 주 40시간 진료 단축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부대변인은 31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열린 전국 16개 시도 회장단 회의 직후 “(개원의들도) 주 40시간 진료를 시작하기로 결론 내렸다”며 “자연스럽게 (동참 개원의가) 확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주 5일 근무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휴일 휴진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만 야간 진료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의대 교수들도 1일부터 근무 시간을 줄이고 외래와 수술을 축소한다. 이처럼 현장 혼란은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정(醫政) 대화는 진척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임현택 당선인 등 강경파들이 총선을 앞두고 한 표가 아쉬운 정치권을 겨냥한 ‘선’을 넘은 발언을 쏟아 내는 가운데 이들 메시지가 마치 의사 전체 의견인 것처럼 ‘과대포집’되면서 의료대란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선(10일) 전 의정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에 가깝다. 정부와 의료계는 물론 당정도 엇박자를 내고 의료계 또한 구심점 없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원의 중심 의협은 의대 정원을 오히려 축소해야 한다며 정부와는 반대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증원은 필요하지만 2000명은 과하다’는 의대 교수들과도 온도 차가 크다.
임 당선인은 지난 29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조건 없는 대화’ 제안에 대해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또 환자들을 설득해 “의사에게 나쁜 프레임을 씌우는 정치인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앞선 인터뷰에선 “국회 20~30석 당락이 결정될 만한 전략을 갖고 있다”고 했고, “십상시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은 측면이 있다”며 대통령 참모들을 중국 후한 말 간행을 일삼은 환관 집단 ‘십상시’로 비하했다.
임 당선인의 ‘거친 입’에 의료계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많은 의사가 ‘강경’으로 돌아서 정부에 협조하거나 대화하자는 의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격한 언행을 해 온 인사가 의협 회장으로 뽑혔다는 것은 그만큼 의사들이 격앙돼 있다는 것”이라며 “정부와 의협 모두 의대 증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는 마주 앉아 의료 현안을 논의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대화를 위해 양측 모두 말을 곱게 할 필요가 있다”고 에둘러 지적했다.
의료계 집단행동이 ‘정치 투쟁화’하면서 의정 대화도 산으로 가고 있다. 숫자만 조정된다면 증원 자체에 대해선 수용할 가능성을 열어 줬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정부의 대화 요구에 침묵하고 있다. 사직서 제출, 의대 교수 근로 시간 단축, 외래·수술 진료 축소 등 의대 교수 사직 투쟁 계획을 차례로 밟아 갈 뿐이다.
전의비는 지난 30일 “4월 1일부로 24시간 연속근무 후 다음날 주간 업무 오프(미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데 동의했다.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수련병원별로 외래와 수술을 조정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위한 필수적 조치임을 양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앞서 전의교협도 1일부터 외래 진료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이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31일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보다 강화된 3차 비상진료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일부에선 의료대란이 수개월 이상 장기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2000년 의약분업 때는 의료 파업 등이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간 이어졌다. 2020년 의대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그나마 2개월 만에 끝났던 것은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해 정부가 버틸 수 없어서였다. 정부는 이번 의료대란이 1년 가까이 지속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장기전 대비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정·한지은·유승혁 기자
2024-04-01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