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건축왕’ 사기 피해 급증
피해액 120억→500억대로 늘어
2년 전 광풍 갭투자 하반기 만료
부동산 침체에 보증금 떼일 우려
尹 “약자 범죄, 정부 대책 검토를”
이른바 ‘건축왕’에게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 3명이 최근 두 달 새 연달아 목숨을 끊은 가운데 계약만료 전세물량이 올해 9월 이후 본격적으로 쏟아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제기됐다.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가 하반기에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18일 건축왕 공범 50여명에 대한 여죄 수사 결과 인천 미추홀구에 몰린 피해가구가 당초 161가구에서 800여가구로 늘고, 피해금액 역시 120억원대가 아니라 500억원대에 이른다는 검찰 발표도 나왔다.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3명은 추가 수사로 드러난 피해자였다.
피해자들이 65개 단체와 구성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는 사회적 재난”이라며 피해자 구제에 초점을 맞춘 정부 대책 및 법령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피해 확산 우려가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전세사기 사건을 언급하며 “전형적인 약자 상대 범죄”라며 “이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 역시 청년 미래세대”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피해신고가 없더라도 지원의 사각지대가 없는지 선제적으로 조사해 찾아가는 지원 서비스를 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받은 전세사기 피해 물건에 대한 경매 일정의 중단 또는 유예 방안을 시행하도록 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해 9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전세사기 피해 앱 출시, 저리 전세자금 대출, 긴급주거지원 등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지 못했다. 건축왕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생활고 끝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순위 근저당을 제하고, 복잡한 권리관계로 인한 유찰을 거듭한 끝에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택 대부분이 감정가의 절반 정도인 저가에 낙찰된 것으로 드러난 지지옥션 통계도 이날 공개됐다. 전세 보증금을 날린 채 집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는 피해자들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반기 전망은 더 심각하다. 전세사기뿐 아니라 ‘깡통전세’ 피해까지 닥치며 보증금을 떼일까 걱정하는 세입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2021년 가을엔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해 부동산 광풍이 불며 무자본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가 급증했다. 2년이 지난 올해 가을부터 전세계약이 끝난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상당수는 전세보증금과 담보대출금을 합친 액수가 시세를 뛰어넘는 깡통전세일 가능성이 크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갭투자 주택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가세다. 국토연구원은 집값이 20% 떨어질 때 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40%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 주택 비율은 내년 상반기에 절정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대책은 전세사기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존 피해자 구제책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피해자들의 보증금을 지켜주기 위해 지난 2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갔을 경우 세입자가 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금 기준을 높였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최우선변제금은 세금보다 우선하는 권리로 임대인의 체납세액이 있더라도 보증금을 먼저 돌려받을 수 있어 세입자들에겐 마지막 희망이다.
정부는 최우선변제금의 소액 임차인 기준을 서울 1억 6500만원, 광역시 8500만원 이하로 상향했고 변제액도 서울 5500만원, 과밀억제권역 4800만원 등으로 높였다.
하지만 최우선변제금은 해당 건물에 근저당권이 설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해, 계약 갱신 시 보증금을 올려 소액 임차인 기준보다 높아지면 우선 변제 대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사각지대를 만든다.
결국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피해 매물에 대해선 즉각적으로 경매를 중단하고, 피해자들에게 경매 주택 우선매수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대책위의 안상미 공동위원장은 이에 더해 맞춤형 금융 지원, 전세보증금 채권이나 피해주택 매입 등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세종 옥성구·인천 한상봉·서울 안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