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긴축’ 마침표 찍은 美… 글로벌 ‘피벗’ 경기 부양 이끄나
연준, 4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 내려
고용 안정에 방점… 연내 추가 ‘빅컷’
주요국 통화 완화정책 신호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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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린 것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인 2020년 3월 이후 4년 6개월 만이다.
워싱턴 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4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하했다. ‘빅컷’(0.5% 포인트 인하)과 ‘베이비컷’(0.25% 포인트 인하)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하던 연준은 노동시장 안정에 방점을 찍고 예상 밖으로 과감하게 금리 인하폭을 키웠다. 연준이 연내 0.5% 포인트 이상 추가 인하를 예고하자 주요국들도 줄줄이 금리 인하를 예고하고 나섰다. 코로나19 이후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작한 긴축 기조에 미국이 가장 먼저 마침표를 찍으면서 완화적 통화정책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새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연준은 18일(현지시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5.25~5.5%에서 연 4.75~5.0%로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12명의 위원 중 11명이 0.5% 포인트 인하에 뜻을 모았다. 연준이 금리를 내린 것은 2020년 3월 이후 4년 6개월 만이다.
연준은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중간값)도 기존 5.1%에서 4.4%로 조정했다. 올해 안에 추가로 0.5% 포인트 이상 금리를 더 인하할 것이라 예고한 셈이다. 연준은 2025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 역시 3.4%로 발표하면서 꾸준히 기준금리를 내리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0.25% 포인트 인하에도 인색했던 연준이 이례적으로 ‘빅컷’을 통해 통화정책 전환에 나선 데엔 빠르게 식고 있는 노동시장의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7월 노동시장 악화로 경기침체 우려를 불러일으킨 데 이어 8월에도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 증가폭이 예상치를 밑돌았다.
지난 7월 3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한 연준의 결정이 ‘빅컷’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7월 FOMC 직후 발표된 미국의 실업률이 경기침체 우려를 불러오자 “연준이 더 빠르게 금리를 내렸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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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한동안 미국의 기준금리는 물가보다 고용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향후 노동시장이 예기치 않게 둔화한다면 연준은 더 빠르게 금리를 인하해 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동시장 상황에 따라 한 단계 더 급진적인 통화정책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시장은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이 글로벌 경기 활성화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유럽과 캐나다 등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지만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이 가진 파급력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지난 6월 유럽중앙은행(ECB)은 역대 최고 수준이던 정책 금리를 0.25% 포인트 낮춘 데 이어 지난 12일에도 예금 금리를 연 3.5%로 0.25% 포인트 인하했다. 캐나다 중앙은행 역시 지난 6월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하며 통화정책 전환에 나선 이후 7월과 9월까지 3회 연속 금리를 내렸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로 금리 인하 시점을 조율 중이던 주요국들이 결단에 나설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점도 글로벌 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미국보다 앞선 선제적 금리 인하가 자국 통화가치의 지나친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미국의 빅컷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이 시작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준은 팬데믹 부양책과 공급망 교란 등 충격 여파로 물가가 치솟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5.25∼5.50%로 높인 뒤 이를 유지해 왔다.
이미 점진적 금리 인하를 진행 중인 스위스와 유럽, 캐나다가 조만간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과 호주, 노르웨이 등도 연내 금리 인하에 동참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는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서 유럽을 비롯한 몇몇 국가가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했지만 자국 경기나 글로벌 경기에 미친 영향을 보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글로벌 경제를 이끌다시피 하는 미국의 이번 통화정책 전환은 어떻게 보면 다른 주요국들이 금리를 내릴 수 있도록 허락을 해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통화정책 완화라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일본의 움직임은 변수다. 일본은행은 지난 3월에 이어 7월까지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특히 7월 기준금리를 0.15% 포인트 인상했을 때엔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인한 대규모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이어지며 아시아 증시 폭락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시장에선 연내 일본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어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이 연내 금리를 올리게 되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규모가 상당히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며 “시장의 변동성을 급격하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재성 기자
2024-09-20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