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역대 최대 부과액 확정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의 다국적 반도체·통신장비업체인 퀄컴 그룹에 대해 1조 3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한 건 정당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글로벌 1위 기업의 국내 ‘특허 갑질’에 대해 공정위의 역대 최대 과징금이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3일 퀄컴과 그 자회사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퀄컴은 휴대전화 등에 쓰이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무선통신과 서비스를 개발·제공하는 미국 기업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같은 스마트기기에 들어가는 세계 1위 모바일용 반도체 칩셋인 ‘스냅드래건’ 시리즈 개발사로도 유명하다.
공정위는 2017년 1월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 제조사들의 사업 활동을 방해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조 311억 4500만원을 부과했다.
퀄컴이 모뎀칩셋 공급과 특허권을 연계해 기업들에 이른바 갑질을 하고, 특허권을 독식했다는 것이다.
당시 심의과정에는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해 미국 업체인 애플, 인텔, 엔비디아와 대만 업체 미디어텍, 중국 업체 화웨이 등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퀄컴은 이에 불복해 2017년 2월 서울고법에 공정위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법은 2019년 12월 공정위 시정명령 10건 중 8건이 적법하며 과징금 부과 처분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퀄컴이 CDMA, 롱텀에볼루션(LTE) 등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와 표준별 모뎀칩셋 시장에서 불공정행위를 했다는 것이 원심 법원 판단이었다.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경쟁 회사와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막거나, 자사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과 모뎀칩셋 공급계약을 부당하게 연계했다는 것이다. 다만 서울고법은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사에 끼워팔기식 계약을 요구하거나 휴대전화 판매가격 일부를 ‘실시료’ 명목으로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선 불공정거래 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이날 판결로 그동안 퀄컴의 불공정행위를 감내하던 국내 기업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는 “비록 라이선스 계약 내용 자체에 대한 위법성은 인정받지 못했으나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반경쟁적 사업구조를 구축하고 시장구조를 독점하는 건 위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판결 취지를 반영해 시정명령에 대한 이행 점검을 철저히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퀄컴 측은 입장표명 자료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며 “앞으로 한국 파트너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함께 발전해 나가길 원한다”고 밝혔다.
강윤혁·박성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