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장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사법의 영역으로 끌려 들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에 반해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함에도 정치적인 고려를 하여 판단함으로써 사법권의 독립이나 정치적 중립이 위협받는 상황을 가리킨다.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사안의 경우 정치적 함의를 가지거나 정치적 논쟁거리가 될 수가 있다. 하지만 정치와 사법이 뒤섞이면서 정치의 역할과 사법의 기능이 본래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해결 대상인 갈등과 다툼이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소위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는 정치의 사법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충분한 토론과 타협으로 만들어져야 할 법률이 위헌적인 절차와 내용으로 만들어졌으니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게 되는 사법적 문제로 된 것이다. 과거 대통령 탄핵 사태 또한 정치의 사법화의 대표적 사례다. 정치 과정에서 야기된 문제들에 관한 고소 고발 등의 형사사건이나 행정쟁송 및 헌법소송 등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많아진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정치는 갈등을, 사법은 다툼을 해결하는 것으로 양자는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하지만 해결 방법은 사뭇 다르다. 정치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한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다수결의 방법을 사용하고, 사법은 직업적 법관에 의한 법의 해석과 적용을 통하여 목적을 달성한다. 정치가 본연의 임무인 갈등의 조정 및 해결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법의 영역으로 문제를 밀어 넣는 것은 정치의 목표인 민주주의의 달성과는 거리가 멀다. 법의 잣대로만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법의 정치화는 진영 논리에 충실한 편향된 인물을 사법부(헌법재판소 포함)의 수장이나 최고위 법관에 임명하거나 법관이 법과 양심에 의거하기 보다는 정치적 신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판결하고 자신의 견해를 외부에 표출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어느 경우나 사법권 독립이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위해가 될 수 있다. 지난 정부 당시 어느 판사가 ‘재판이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라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려 적폐청산과 사법농단 사건의 수사와 재판이 한창이던 민감한 시기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사법권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에 배치되는 발언이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판결에 반영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법관의 다양성은 필요하고 법관 자체도 직업인 이전에 자연인으로서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지만 사건을 다루는 법관의 지위와 결합되는 경우 정치적 성향의 추구는 옳지 않다. 정체되지 않는 법관의 언어는 사법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사법부의 판결은 여야로부터 찬성과 지지, 반대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괴담에 관한 법원 판결은 심한 찬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뇌송송 구멍탁’이라는 괴담의 방송물을 제작 배포한 MBC PD수첩 제작진의 허위사실 명예훼손 사건이 무죄로 결론난 것은 사법의 정치화 우려를 자아냈다. 허위사실이 일부 인정됨에도 무죄로 판단하였으니 같은 법률가의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적 해석과 진영간에 찬반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판결을 지속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정치 권력이 대화와 토론, 타협을 통한 갈등 해결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법에 호소하는 현상은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징표다. 한편 사법의 정치화는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라는 헌법 가치 실현에 복무하는 사법권 독립에 대한 심대한 장애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성숙과 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정치의 사법화나 사법의 정치화는 지양되어야 한다.
박기준 변호사·전 부산지검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