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fandom). 광신도를 뜻하는 fanatic의 fan에 영역·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dom이 붙어 만들어진 합성어다. 특정 인물이나 분야, 취미에 열성적으로 몰입한 사람을 의미한다.
대중문화에 주로 쓰이던 팬덤이 정치권으로 옮겨온 지도 오래됐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대표적이다. 정치 팬덤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팬덤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고, 집권 내내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정치 팬덤은 긍정적 면도 있지만 부정적 면도 있다. 문 전 대통령에게도 보약이면서 독약(毒藥)이 됐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팬덤은 무비판적 지지였다. 잘잘못을 따져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이성적 모습보다는 맹목적 지지에 가까웠다. 문 전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호하는 등 잘못을 했을 때에도 광적으로 지지했다. 지지율이 20% 이하로 떨어졌다면 문 전 대통령이 국정을 바로잡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 팬덤이 독약이 된 셈이다.
이재명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77.77%란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것은 이 의원을 지지하는 정치 팬덤 덕분이었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친명 성향 권리당원들의 압도적 지지가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었다. 지금 정치권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을 가진 사람이 이 대표다.
문 전 대통령에게서 증명됐듯이 정치 팬덤이 이 대표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대권 도전 발판인 동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대표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확장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도를 넘은 정치 팬덤은 일반 유권자, 특히 승패를 좌우하는 중도층의 외면을 불러오는 등 지지층을 넓히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강경 지지층인 정치 팬덤에 휘둘리지 말고 중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언행을 보여줘야 할 숙제가 이 대표에게 주어졌다.
‘법구경'(法句經)에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 버린다’고 했다. 정치 팬덤은 정치인에 의해 생겨난 것이지만 자칫하면 그 정치인을 삼켜 버릴 수 있다. 이 대표가 두고두고 명심해야 할 경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