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문화콘텐츠학 박사/한국영화100년사 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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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거치고 영화는 대중문화의 선두를 차지하였고 극장은 늘어났다. 당시 3대극장은 스카라, 명보, 국도극장이 꼽힌다. 국도극장이나 스카라극장은 일제강점기에 개관하였고 한국영화의 산실로 불린 명보극장은 1957년에 개관하였다.
국도극장은 1913년 을지로에 건립된 황금연예관으로 1925년에는 경성보창극장, 1936년에는 황금좌로 이름을 바꾸었다. 광복 이후 1946년 신축 개관하면서 국도극장이 되었고 1999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이후 국도호텔이 신축되었다. 국도극장은 한국영화 명문관으로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이두용 감독의 <내시> 등이 상영되었고 원화평 감독, 성룡 주연의 <취권>이 흥행에 성공했던 기록을 갖고 있다.
스카라극장은 약초극장(若草劇場)은 약초정(지금의 충무로)에서 1935년에 개관하였다. 일본 동보영화사가 부분 투자를 하였는데 1946년 극장의 지배인이었던 홍찬이 인수하여 수도극장(首都劇場)으로 개명된다. 1962년 운영권이 넘어가며 스카라극장이 되어 2005년 폐관하며 새 빌딩이 들어섰다. 스카라극장은 대한극장과 더불어 70mm상영관으로 활용되었다.
중앙극장은 1922년에 건립된 중앙관으로부터 시작된다. 1934년부터 중앙극장으로 바뀌었고 1944년 조선악극단 출신 김상진이 인수했다가 1952년 동양물산이 인수하면서 사실상 벽산그룹의 소유 극장이었다. 1998년에는 3개관, 2000년에는 5개관으로 증축하여 2007년부터 중앙시네마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부 상영관을 ‘스폰지하우스‘와 ‘인디스페이스‘에 대여하기도 했다. 결국 2010년 5월에 폐관되며 지금은 대신증권 신사옥이 들어섰다.
우미관(優美館)은 1910년 경성고등연예관에서부터 시작된다. 개명을 거쳐 당시 종로를 대표하는 극장이었다. 이곳을 두고 김두한과 일본인들의 세력다툼이 극화된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알려진 극장이다. 우미관은 한국전쟁을 거치고 재개봉관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82년에 슬그머니 폐관되었고 지금은 개축하여 식당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퇴계로에 자리한 대한극장은 70mm 전용관으로 1958년에 개관하였다. 영화관의 설계는 20세기 폭스가 하였고 당시 최고설비의 극장으로 각인되었다. 대일필름의 국쾌남 일가가 소유하여 좋은 영화들이 우수한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명품 영화관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 5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12월 15일에 멀티플렉스극장으로 재개관하였다. 대한극장하며 역시 <벤허>가 기억되는데 개봉을 비롯하여 몇 차례나 앵콜 상영되었다. 이후에도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대표적인 70mm영화들이 상영되었다.
명보극장은 1957년 이지룡 씨가 건립하여 운영하였다. 한국영화 전용관으로 주로 신필름 제작의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상록수> 등을 개봉하였다. 이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신영균 배우가 1977년에 인수하여 운영 중 2009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단장하였다. 신영균 배우는 2015년에 이 극장을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소유로 기증하였다.
단성사(團成社)는 1907년 종로에 세워진 최초의 본격적인 상설 영화관이다. 1919년 연쇄극 <의리적구토>가 상영되었고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 개봉되어 기마경찰이 출동할 정도였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도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100만 명의 흥행기록을 기록하였다. 이는 단일관 최초의 100만 명 흥행기록이다.
피카디리극장과 마주하며 서울극장과 더불어 종로의 트라이 앵글 시대를 주도했으나 2001년 멀티플렉스로 변화를 시도했으나 경영난으로 극장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귀금속 빌딩으로 바뀌었다.
피카디리극장은 195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960년에 한국영화 전용관인 서울키네마으로 시작했다. 같은 해에 반도극장으로 개명했고, 1962년 외화관인 피카디리 극장으로 개명했다. 1,344석으로 당시 4대관으로 꼽혔다. 맞은편의 단성사와 더불어 종로2가 일대를 영화1번지로 만들었다. 외화관으로 성업 중이었던 2004년 총 8개관의 멀티플렉스 극장을 4년간 공사하여 지하에 완공하였고 현재는 CGV 피카디리 극장으로 운영 중이다. 메인인 1층은 보석상가로 변신했다. 이 극장에서 수많은 영화들이 상영되었는데 이소룡 최초의 한국 개봉작인 <정무문>이 당연히 떠오른다. 이 극장을 지날 때마다 1973년 7월의 길게 늘어선 줄이 기억난다.
인근의 청계천 변 세운상가에 있었던 아세아극장은 1968년에 세운상가가 완공되며 운영을 시작했다. 홍콩영화 등 액션영화를 주로 상영하며 극장 쇼도 하였던 극장이다. 1988년 필자의 시나리오 데뷔작 <사방지>를 개봉했던 극장이라 기억에 새롭다. 단일관이 쇠퇴하며 2001년에 폐업하고 아세아 전자상가가 되었다.
허리우드극장은 1969년에 낙원상가가 완공되며 건물 4층에서 운영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서울시로부터 신상옥 감독이 위탁 운영하였고, 신필름이나 안양영화사의 영화들이 독점 개봉되었다. 신상옥 감독이 운영에서 손을 떼고 개봉관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중 2000년대 이후 이곳은 중형극장으로 개조해 운영되었다. 현재는 1·2관이 허리우드 클래식과 서울아트시네마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당시 극장의 위세는 대단하였다. 신작 외화나 한국영화 개봉작을 상영하기 위해서 제작자들의 경합이 심했고 웃돈을 주고 계약할 정도로 극장은 성황이었다. 극장 소유는 영화제작자들의 꿈이었지만 영세한 자본으로는 쉽지 않았다. 6:4정도로 수익을 배분하던 극장은 그야말로 호황이었다.
1960년대부터 영화사의 통폐합을 거듭되고 의무제작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영화제작자들은 하나둘씩 극장을 소유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세기극장을 인수하여 서울극장으로 개명한 합동영화사가 있고 강남구 논현동에 시네하우스를 개관한 우진필름, 강남역에 동아극장을 개관한 동아수출공사가 있다. 극장의 개관은 영화인들의 꿈이었으나 대기업이 영화계에 투자를 시작하고 시장을 잠식하며 멀티플렉스 극장을 개관함에 따라 극장가의 판도는 재벌기업으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