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아이브와 르세라핌은 일본 NHK <홍백 가합전> 출연이 발표된 상태다. <홍백 가합전>은 매년 12월 31일에 방송되는 가요제로서 일본 연말 가요제 중 가장 시청률과 인지도가 높은 국민적 방송이다.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한국 가수들이 출연한 전례가 있다. ‘가왕’ 조용필부터 ‘아시아의 별’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를 거쳐 트와이스가 출연했었다. 한국 가수의 홍백 출연은 현지 인기의 반영인 동시에 출연을 통해 다시금 전국적으로 지명도를 높이는 기회였다. 올해에는 트와이스와 아이브, 르세라핌이 섭외되었는데, 홍백 출연 경력이 세 번이나 있는 트와이스와 달리 아이브, 르세라핌은 데뷔 1년 차 신인 그룹이다. 아이브는 올 후반기에 일본 데뷔 싱글을 냈을 뿐이고 르세라핌은 아직 일본 데뷔도 하지 않았다.
아이브의 출연 소식이 보도되며 일본에선 반발 여론이 크게 일어났다. 별다른 국민적 인지도도 없는 외국 가수가 왜 공영방송 연말 가요제에 초대되냐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납득할 만하다. 이처럼 초고속으로 홍백에 출연하는 건 그야말로 이례적이다. 두 그룹이 역대 케이팝 가수들에 비해 그럴 만큼 지명도가 있냐고 하면 아직은 그렇지도 않다. 현지에선 홍백 시청률이 예년 같지 않은 상태에서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케이팝 가수를 껴안으려는 시도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 말이 암시하는 현실은 동방신기, 카라가 이끈 ‘제2의 한류’와 달리 현지에서 케이팝이 대중성 없는 젊은 세대들의 문화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을 뜯어보면 한일 양국의 사회상과 문화산업의 관계를 비교 대조해볼 수 있다.
일본은 전체 인구 중 30%가 65세 인구로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다. 세계에서 가장 노인이 많은 국가에 속한다. 젊은 세대가 줄고 늙은 세대가 늘면 트렌드를 생산하는 계층인 젊은 세대의 수요를 반영하는 문화적 크리에이티브가 희석되기 마련이다. 지금은 일본 문화산업이 한국 문화산업에 뒤쳐졌단 평가가 많지만, 팔구십 년대는 제이팝의 전성기였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 산업으로 통했다. 00년대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문화산업은 오늘날 ‘케이 컬처’가 누리는 영광을 일정 부분 선취한 산업이다. 일본 문화가 예전 같은 왕성함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시기를 더듬어 보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2010년 전후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맞물려 케이팝 가수들의 일본 진출도 본격화됐다.
이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알다시피 한국 역시 고령화의 해일에 직격당하고 있다. 한국은 2017년에 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이상)로 진입했고,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를 맞을 것이 예상된다. 한국 문화산업 역시 크리에이티브가 사라지는 동어반복의 구조와 노인 취향 문화가 증식하고 있다. 이 상황은 저출산과 맞물려 두 개의 세대 축으로 진행된다. 노년 세대를 중심으로 트로트 장르가 메인스트림이 됐고, 중장년 세대를 중심으로 90년대와 00년대가 불려 와 현재진행형으로 상연된다. 후자의 경우 해당 시기 데뷔한 배우, 방송인들의 롱런과 <놀면 뭐하니> 같은 <무한도전>의 유산을 재판매하는 방송, 서브컬처 분야에선 발매 후 20년이 지난 ‘스타 크래프트 1’이 여전히 일정한 소비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현상 등으로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새로운 것을 소비하던 일이십 대가 인구수가 적으니 베이비 붐 세대와 칠팔십 년대 생 ‘영 포티(young forty)’가 시장의 중심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 사이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역사적인 사회문화적 연속성 및 내수 지향적 문화산업과 외수 지향적 문화산업의 차이다. 한국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걸쳐 그 이전의 사회상으로부터 단절적 변화가 일어난 사회다. 형식적 민주화 및 냉전 종식 이후 문호 개방, 세계화, 문화적 자율화가 일어났다. 이것이 90년대 이후 밀려 들어온 북미권 대중문화와 IT 인프라 보급과 맞물려 문화산업의 내용물을 갈아 치웠고,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도 격변했다. 80년대 후반에 유행한 가요와 90년대 초반에 유행한 가요를 비교해 들어보면 단 몇 년이 차이가 날 뿐인 데도 장르와 스타일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문화산업에선 이런 단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여성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와 90년대 모닝구 무스메, 2010년대 AKB48의 노래를 들어 보면 편곡 상의 박자감은 차이가 있어도 엔카풍 멜로디로 구성된 본질적인 감각은 달라진 것이 없다.
즉, 한국은 90년대를 거쳐 현재 빌보드 음악을 지배하는 힙합과 알앤비 같은 흑인 음악을 중심으로 음악산업이 재편된 불연속적 사회다. 그 흐름 위에서 지금까지 글로벌 문화와 최신 트렌드와의 동질성을 구성했다. 반면 일본은 적어도 메인스트림 음악계에선 빌보드 취향 음악, 흑인 음악이 주류로 유행한 적이 없고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고유한 취향과 감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연속적 사회다.
한국 문화산업은 00년대 이후 인터넷 콘텐츠 공유를 통해 저작권 개념이 우회되며 타격을 입었다. 내수 시장 축소와 함께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케이팝은 가장 조직적인 방식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 온 첨병이었다. 국내와 해외 시장을 함께 겨냥하는 과정에서 국내 취향과 글로벌 취향이 동질화됐고 해외 트렌드를 계속해서 받아들이고 모방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내수 시장이 훨씬 큰 나라다. 인구가 두 배가 많고 미국 다음으로 음악 시장이 크다. 독자적인 산업 기반이 촘촘하게 닦여 있어 해외로 진출할 필요성이 없었다. 작년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하고 이룬 글로벌 경제 효과가 1조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재작년 <귀멸의 칼날>이 각종 미디어 믹스와 파생 상품을 통해 일본 내에서 기록한 경제 효과가 2조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이 케이팝 기획사들이 일본을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보고 한국 연말 가요제를 사전 녹화로 진행하면서까지 홍백 가합전 같은 현지 가요제에 출연해 온 배경이다. 역으로 일본은 내수에 안주하는 시장 구조가 글로벌 흐름과 동떨어진 시장, 새로움과 역동성이 부족한 시장을 만든 것이다.
정리하면, 한국과 일본 모두 노령화의 흐름 속에 내수 문화 시장의 크리에이티브가 고갈되는 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은 글로벌 지향적 산업 구조가 계속해서 외부의 트렌드에 맞춘 새로운 콘텐츠를 창출하고 있고, 그것이 국내에서 소수화돼 가는 젊은 세대의 취향과 연동된다는 점이다. 즉, 한국은 문화산업 구조가 바깥을 향해 터져 있기 때문에 노령화의 흐름이 새어 나가지만, 일본은 내수 중심의 닫힌 구조라서 노령화의 압력이 중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젊은 계층이 즐기는 문화가 충분히 재생산되지 못하고 외부의 글로벌 문화, 케이팝을 통해 수혈하고 있다.
일본에서 과거의 ‘한류’가 현지에서 특별히 인기를 끈 드라마나 현지화를 통해 대중적인 방식으로 소비되었다면, 지금의 케이팝은 일본 현지를 넘어선 글로벌 문화로서 젊은 세대가 그 글로벌 네트워크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것이 공영방송 NHK가 현지에서 제대로 활동도 하지 않은 신인 케이팝 그룹들을 국민적 연말 행사에 초대하게 된, 다소 무리한 상황 뒤에 있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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