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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를 돌려줘라. 임대료 반환 없이는 가게 문 안 연다.”
지난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가장 큰 의류 도소매 시장인 치푸루 시장. 굳게 내려진 가게 셔터마다 붙여진 종이에 담긴 문구다.
코로나 확산 초기인 3월부터 석달간 장사를 못 한 상인들은 지난 14일 상가 앞 거리로 나서 중국에서 보기 드문 시위까지 벌였다. 이젠 인근 거리는 물론 상가 안까지 경찰관들이 촘촘히 배치돼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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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시가 이달부터 봉쇄를 풀고 ‘전면적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상가에는 아직 다시 문을 열지 못한 가게가 더 많았다.
내려진 셔터에 덕지덕지 붙은 임대 안내 종이는 아예 장사를 접은 이들이 많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손님들이 거의 없는 상가 3층. 여성 옷을 파는 저우씨 점포 벽에는 ‘임대 만료. 4벌에 100위안(1만9천원)’이라고 쓰인 ‘땡처리 안내’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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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봉쇄로 30만 위안(5천700만원)이 넘는 재고를 떠안고 성수기 봄 장사를 망쳤다”며 “봉쇄가 끝났지만 손님이 예전의 30%도 안 되고 앞으로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 떠나려는 상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치푸루 시장은 6천500여개의 옷가게가 몰려 성수기 때 하루 유동 인구가 10만명에 달하는 ‘중국의 동대문’ 같은 곳이다. 상인들과 직원, 인근 음식점들까지 줄잡아수만명이 생계를 의존하던 곳이다.
지금 치푸루 상권의 모습은 중국이 극단적 도시 봉쇄로 상징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해 치르는 경제적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중국이 유지하던 만리장성식 방역 장벽이 탐지가 어려운 오미크론 변이에 뚫리면서 안정적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올해 들어선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최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 급랭,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 사업 위축,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원자재 가격 폭등, 미·중 갈등 격화 등이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의 성장 동력을 조금씩 훼손했다면 올해 3월 이후 본격화한 코로나19 유행은 중국 경제를 단숨에 위기 국면에 몰아넣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올해 성장률이 정부가 연초에 정한 5.5%는커녕 우한 사태 충격으로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 이후 최악이던 2020년의 2.3%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왔다.
중국의 금융·상업·물류 허브인 상하이 봉쇄의 충격파로 당장 2분기에는 역성장을 예상하는 시각도 나온다.
다만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등 주요 지표가 상하이 봉쇄의 충격파가 가장 컸던 4월 바닥을 찍고 5월부터는 일부 반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3∼5월의 손실을 만회하기가 어렵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상하이만 해도 봉쇄가 풀린 지 보름이 지났지만 이전 같은 활력은 보이지 않는다.
상하이 창닝구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몰 중 한 곳인 난펑청을 찾았다. 최근 다시 문을 열었지만 고객의 발걸음이 뜸해 오가는 고객보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 직원이 더 많을 정도였다.
시 당국이 영업 재개를 아직 허용하지 않은 멀티플렉스 극장의 문은 닫혀 있었다. 영화관 앞에는 봉쇄 직전인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더 배트맨’의 포스터가 아직도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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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가 풀려 자유를 얻었다고 하지만 상하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출근해 일하는 것,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것, 문을 연 몇몇 공원에 갈 수 있는 정도다.
아직은 외식할 수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도, 놀이동산에 갈 수도, 여행을 떠날 수도 없다. 다른 도시에서도 코로나19 감염자가 몇 명만 나와도 감염자가 나온 주거단지를 봉쇄하고 코로나19 전수 검사를 벌이는 게 공식화돼 있다.
중국 경제의 가장 강력한 성장 엔진인 소비가 묶여 있는 것이다. 소비 증가율은 3월부터 3개월 연속 마이너스권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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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싶어도 돈을 못 쓴다는 불만은 행복한 축에 속한다. 코로나19 확산 재발 우려를 이유로 아직 영업이 허용되지 않은 체육·오락 시설, 영화관, 예체능 교육 기관, 호텔 등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은 아직 출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심각한 생계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등 세계 주요국과 달리 중국의 물가 상승 압력은 상대적으로 낮아 중국 당국에 경기 부양책을 펼칠 공간을 제공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는 심각한 수요 충격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민생의 척도인 실업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전국 31개 주요 도시의 실업률은 정부가 정한 목표인 5.5%를 훌쩍 넘어 6.9%까지 올랐고, 청년 실업률은 18.4%로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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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정 투입 여력에 한계가 온 상황에서 미국이 강력한 통화정책 긴축 주기에 접어들면서 중국이 더는 미국과의 통화정책 탈동조화를 더욱 심화하면서 추가 완화 정책을 펴기도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많다.
왕타오 UBS 이코노미스트는 “정책적인 지원이 강화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경제 하방 압력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방역 정책이 여전히 엄격하고, 명확한 출구도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는 계속 소비를 억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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