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사과값은 44년 만에 최대인 88.2%, 배값은 49년 만에 가장 큰 폭인 87.8% 올랐다. 총선을 앞두고 심상치 않은 민심에 정부는 앞서 1500억원의 긴급 가격안정자금을 투입했지만 물가는 요지부동이었다. 물가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큰 기름값도 반등 조짐이다. 고물가 장기화로 내수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옅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국민이 체감할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 무기한 투입하고 지원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까닭이다.
통계청은 이날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113.94(2020년=100)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올랐다고 밝혔다. 물가상승률은 지난 1월 2.8%로 내렸다가 2월 3.1%로 반등한 뒤 2개월 연속 3%대다.
물가 상승세를 이끈 품목은 농산물, 특히 과일이었다. 농산물은 20.5% 오르며 지난 2월 20.9%에 이어 두 달 연속 20%대 상승했다. 과실도 40.3% 오르며 전월 40.6%에 이어 두 달 연속 40%대였다. 지난 2월 71.0% 올랐던 사과는 지난달 88.2% 급등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최대 폭이다. 배는 87.8% 올라 1975년 1월 이래 가장 많이 올랐다. 귤 68.4%, 복숭아 64.7%, 감 54.0% 등 과일값 대부분이 치솟았다.지난달 18일부터 농축산물 납품단가와 구매 할인 지원에 1500억원이 투입됐는데도 오름폭은 더 커졌다. 통계청 관계자는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결과에 할인 지원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고객에게 조건 없이 할인이 적용되면 할인 가격이 통계로 잡히지만 한도가 정해진 조건부 할인은 할인되기 전 가격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통계를 인용해 “3월 하순 사과 소매가격은 10개당 2만 4726원으로 3월 중순보다 8.8% 내렸고, 배는 10개당 3만 9810원으로 7.0% 내렸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과일값에 초점을 맞춘 물가 대책을 쏟아 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농축산물 할인율 30% 유지 ▲직수입 과일 5만t 이상 확대 및 시중가보다 20% 낮은 가격 공급 ▲사과 계약재배 물량 4만 9000t에서 6만t으로 확대 등을 제시했다.
농식품부는 중장기 해법으로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대책’(2024~30)을 발표했다. ▲사과 계약재배 물량 2030년까지 15만t으로 3배 확대 ▲강원 사과 재배면적 지난해 931㏊에서 2030년 2000㏊로 2배 이상 확대 ▲노란 사과 ‘골든볼’, 초록 배 ‘그린시스’ 등 신품종 확대가 골자다.
최 부총리는 “3월에 정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가) 빠르게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꿈틀대기 시작한 유가가 변수다. 지난달 석유류는 전년 동월 대비 1.2% 올랐다. 석유류가 오른 건 지난해 1월 4.1% 이후 14개월 만이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했다. 1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의 배럴당 가격 모두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기재부는 4월 말로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휘발유 25%, 경유 37% 할인) 조치를 2개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