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부인 기시다 유코와 함께 8일(현지시간) 전용기편으로 미국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하면서 방미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일본 총리가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건 2015년 5월 당시 아베 신조 총리에 이어 9년 만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10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일은 안보·첨단 기술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협력하면서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정부가 육상·해상·항공 자위대를 일원적으로 지휘할 통합작전사령부 창설에 맞춰 미국 정부가 주일미군 지휘 통제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공동성명에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자위대가 자국 보호 등 국방 범위를 넓힐 경우 미군은 유사시 역내 다른 곳에서 작전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 양국이 무기 개발·생산 범위도 넓히면서 1960년 미일 안보조약 체결 이후 64년 만에 안보 협력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1일에는 미일 안보 공조가 필리핀으로도 확대된다. 이날 오후엔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함께 사상 첫 3국 정상회담을 연다. 이어 중국의 강압 행위 고조에 맞선 남중국해 3국 합동 해군 순찰 실시 등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중국 견제가 초점인 미국·영국·호주 3국 군사동맹인 오커스(AUKUS)가 첨단 군사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일본과도 협력에 나선다. 제이컵 스톡스 신미국안보센터(CNAS) 선임연구원은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동중국해에서의 중국의 회색 지대 전술, 군사적 공세를 일본이 최전선에서 맞는 가운데 열린다”면서 “일본의 자체 군사력 강화, 미일 동맹 심화, 다양한 안보 파트너십 네트워크 구축 등 세 가지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단독으로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최대 동맹국인 일본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도 중국 견제를 발판 삼아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전쟁 포기, 국가 교전권 불인정 등을 규정한 ‘평화헌법’ 체제를 종식하고 ‘보통국가’가 되겠다는 숙원에 점차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일본 내에서는 이번 미일 정상회담이 기시다 총리에게는 지지율 반전의 기회가 될지도 지켜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가운데 성공적인 미일 관계를 연출해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키려는 목적도 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미국 방문을 끝낸 직후 열리는 중의원 보궐선거(4월 28일)에서 자민당은 제대로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있어 총리의 방미가 순조롭게 끝나도 의도대로 국내 정국이 움직일지 전망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미일 정상회담 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하는 공식 만찬이 예정돼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방미길에 미일 우호의 상징으로 왕벚나무 묘목과 지난 1월 1일 지진이 발생한 노토반도의 전통 칠기인 ‘와지마누리’를 바이든 대통령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이어 11일 일본 총리로선 9년 만에 미국 상·하원 의회 연설에 나선다. 12일엔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도요타자동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찾는다. 요미우리신문은 “오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할 가능성도 있어 공장 방문을 통해 ‘미국의 고용을 일본 기업이 지지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