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명상열풍엔 장단점 교차
그들은 이미 많은 불교국에서
불교 배우고 명상방법도 익혀
우후죽순처럼 명상센터 생겨
승가가 없는 명상 시대 예측
하지만 수행근본은 ‘정견’이니
한국불교 전통에 자신감 갖고
그 수행열풍 함께 하면 될 것…
미국, 첫 인상은 거대하고 비옥한 명당!
8월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서 마중 나온 불자님들의 차를 타고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로 이동하는 동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끊임없이 펼쳐진 일자문성(一字文星)의 나지막한 산들이었다. 전통적인 지리학에서는 앞산이 책상처럼 길게 이어지는 곳을 최고의 공부터로 보고 있는데 북가주가 전형적인 이러한 명당으로 참선의 장소로도 그만이었다. 일본 조동종의 스즈키 슌류(鈴木 俊降, 1904~1971)선사가 샌프란시스코 젠센터를 비롯하여 이곳을 기점으로 젠(zen: 禪의 일본 발음) 열풍을 일으킨 데는 땅의 역할도 컸다고 보여 진다.
보름 동안 방문한 서부의 버클리와 UCLA, 동부의 하버드와 컬럼비아 대학교의 공통점은 입지조건이 모두 대명당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인들 역시 땅의 에너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이는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으로 명당 진혈을 우연히 찾은 것이 아니었다. 아이비리그의 최고 명문대학들은 정확하게 혈 자리에 주요 건물들을 배치해 두고 있었다. 풍수는 과학이냐 미신이냐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타고난 지혜와 본능의 소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LA까지 5번 도로로 이동하면서 보았던 방대한 대륙의 스케일에 다시 한번 놀라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런 땅을 가지고 세계 1위를 못 한다면 말이 안 되지.” 한국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이런 어마어마한 나라와 지금까지 외교와 협상, 대화와 경쟁을 하며 이렇게 버텨왔다는 것이 더욱 신기해 보였고 한국인의 힘과 의지로 초일류 국가로 성장해 가고 있음에 더 큰 자긍심이 생겼다.
한류가 한국학을 견인할 것
미국을 대표하는 대학들의 한국학연구소를 방문하면서 느낀 점은 간단했다. 연구나 학술의 방면에서는 여전히 한국학은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비해서 인식이 미미하다는 점과, 동아시아학 전체의 일부로서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러한 현실로 인해 의기소침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한국학은 아직 시작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방대한 연구와 학술적인 접근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이 엄청난 물량 공세로 미국에서 자국에게 유리한 학문을 견인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한글을 직접 배워서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될 전 세계의 수없이 많은 10~20대 외국 젊은이들이 40~60대의 장년층이 되는 시점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한류라는 것은 음악, 드라마, 영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글과 한국어를 배운 방대한 숫자의 외국인들이 직접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현실을 체험하면서 확장해 갈 것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격적인 한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미국에서의 네 차례 강연의 핵심요지가 되었다.
UCLA 한국학연구소장인 이남희 교수는 한류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한국학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한국어를 비롯하여 한국에 대해서 배우고자 하는 외국 학생들의 수요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수직적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관심은 앞으로 한국의 정신과 사상에 대한 탐색으로 점차 번져나갈 것이다. 이번 방미(訪美) 일정에서 나는 한국에서 세계 한국학 연구에 도움이 될 자료들과 기본 텍스트들을 만드는 데 본격적으로 착수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불교의 핵심을 담을 수 있는 저술의 집필도 빼놓을 수 없다.
‘외기내불(外基內佛)’ 시대를 거쳐…
이번 일정 가운데 미국에 들어온 전 세계의 다양한 불교가 어떻게 미국 사회에 적응하고 정착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주요한 관전 포인트였다. 일본, 대만, 중국, 스리랑카, 티베트 등의 사찰을 두루 참방하였고 그들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서양인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파하고 수행을 보급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미국인들의 자체적인 불교 수용의 태도와 발전 양상이었다. 미국은 이제 단순한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미국불교사>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판할 수 있을 만큼 자체적인 역사를 쌓아왔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교를 소화시켰고 새로운 모습으로 발효시켜 내고 있다.
그들은 한때 동양에서 온 스님이나 수행자를 보기만 해도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외기내불(外基內佛)’의 시대를 거쳐서 이제는 ‘외기내선(外基內禪)’의 시대로 전변한 것으로 보인다. 외기내선! 이 용어는 이번에 미국을 보고 느낀 소회를 단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미국은 이제 종교와 상관없이 온통 명상(冥想)의 세상이 된 것이다. 미국 서해안의 산타 모니카 해변의 유명한 명상센터인 요가난다의 입구에 걸려있는 ‘All Welcome’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이제 미국인의 삶에서 명상과 참선은 기본이 되어 있다. 그들은 불교의 핵심이 마음 수행에 있음을 간파했고, 종교를 떠나 무조건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미국형 명상문화를 이미 정착시켜가고 있다.
우리는 뉴욕 맨해튼의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 욕망과 광분의 기운만 본 것이 아니라 그 인근에 미국에서 가장 방대한 ‘오메가 인스티튜트’라는 명상센터가 있어서 삶의 활력을 새롭게 공급받고 생기를 충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미국인이 뛰어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선(禪)이라는 진여를 만났을 때 그동안 짊어지고 왔던 오래된 짐을 지게에서 내려놓고 바로 명상을 옮겨 실을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적인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개인적으로 이번 방미 일정에서 두 가지 확신을 갖고 돌아왔다. 이제 한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이는 방대한 한국학의 서막을 여는 기점이 될 것이라는 것과, 지구의 축소판과 같은 미국에서의 선(禪)의 열풍과 정착을 보면서 한국불교의 미래와 한국선(韓國禪)의 전통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명상 열풍에는 장단점이 교차한다. 미국은 승가가 없는 명상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그들은 이제 많은 불교국으로부터 불교를 확실히 배웠고 명상의 방법을 익혔으며 자기화 하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한국의 요가학원처럼 우후죽순처럼 명상센터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마음 수행의 근본은 불교의 근본인 정견(正見)을 여의면 곤란하다. 우리는 한국불교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확신과 비전을 중심에 놓고 세계적인 수행 열풍과 함께 하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깨닫고 왔지만 한국은 보통 나라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폄하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다. 미국을 보고 오니 한국이 더욱 자랑스러워 보인다. 시인 김수영이 그랬던가.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라고 말이다.
[불교신문 3732호/2022년9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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