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속 ‘짠물소비족’ 공략
PB상품 하루 왕창 득템
난 오픈런 말고 ‘마감런’
새것 같은 리퍼브 몰라?
반값 대목 놓칠 수 없지
#40대 주부 A씨는 요즘 주말마다 ‘냉파’(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서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매주 한두 끼나마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식재료를 활용하는 빈도가 높아진 것이다. A씨는 “요즘에는 장보기나 외식 횟수를 줄이고, 배달 음식도 배달비가 비싸서 직접 사러 가는 식으로 짠테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갑 닫힐라… 가성비 상품 전면에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으면서 A씨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는 알뜰 소비족이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마요네즈나 식용유처럼 소비자가 찾는 주요 식품 상당수는 최근 1년 사이 원재료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큰 폭으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협의회가 지난해 9월과 올해 9월 사이 29개 식품을 놓고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와 원재료 가격 등락률을 비교해 보니 이 가운데 8개 품목은 원재료 가격이 하락했으나 소비자 가격은 올랐다.
이 기간 마요네즈는 소비자 가격이 26.0% 상승했지만 원재료값은 22.0%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식용유도 소비자 가격이 10.3% 올랐는데 원재료값은 27.5% 하락했다. 이 밖에 밀가루, 분유, 두부, 어묵, 맛살, 껌 등도 원재료 가격은 떨어졌지만 소비자 가격은 오른 품목에 포함됐다.
●GS25, 소비임박 상품 할인 호응 좋아
이런 상황에 소비자 지갑이 닫힐세라 유통업계도 각종 할인 행사는 물론 가성비를 갖춘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강화하는 한편 ‘마감할인’, ‘리퍼브마켓’ 등 이른바 ‘B급 상품’을 전면에 적극 내세우면서 소비자의 발길을 붙잡으려 하고 있다.
가성비 먹거리 확장에 집중하고 있는 편의점 업계에서는 ‘오픈런’(상품 구입 등을 위해 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 ‘마감런’을 노린 서비스를 시작했다. GS25는 지난 27일 자사 앱을 활용해 소비기한(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한)이 임박한 도시락, 김밥, 샌드위치 등 신선식품을 최대 45% 할인 판매하는 마감할인 서비스를 선보였다. 자사 앱 ‘우리동네GS’에 매장별로 소비기한 만료가 45분~3시간 남은 상품이 자동으로 등록되면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는 식이다.
영업시간 종료 전 할인이 보편적인 백화점·마트 신선식품과 달리 편의점에서 자체적으로 앱과 기술을 통해 마감할인 서비스를 출시한 것은 GS25가 처음이다. 회사 관계자는 “소비기한이 지나더라도 상품이 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감할인 상품은 판매나 섭취에 문제가 전혀 없는 정상 제품”이라며 “지난 5월까지 중고 거래 앱 ‘당근’과 협업해 마감할인을 진행했는데 매달 매출이 증가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롯데마트, 리퍼브 매출 30% 뛰어
롯데마트는 일반 소비자 가격보다 70% 이상 저렴한 리퍼브 상품 판매에 공을 들이고 있다. 리퍼브 상품은 매장에 전시됐거나 유통 과정 중 미세한 흠집이 생겨 반품된 것을 다시 정비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23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2주간 23개 점포에서 리퍼브 홈데코나 주방용품, 생활용품 등을 최대 80% 이상 할인 판매하고 있는데 이날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30%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올해 1~10월 리퍼브 상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배 늘어나는 등 가성비 상품을 찾는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다. 다음달 초에는 광주 월드컵점에 약 300평 규모의 대형 리퍼브숍을 새로 열고 생활용품뿐 아니라 TV, 전자레인지 등 필수 가전을 비롯해 소파, 식탁과 같은 가구까지 판매할 계획이다.
●신세계 ‘쓱데이’ 매출 올 1.7조원
신세계그룹의 할인 행사는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극가성비’ 상품을 앞세워 주목받았다. 신세계그룹 20개 계열사가 이달 13~19일 공동 진행한 쇼핑 행사 ‘쓱데이’는 직전 행사인 2021년 대비 22% 증가한 1조 7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스타벅스는 13일부터 나흘간 오후 2~5시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를 평소보다 1500원 저렴한 3000원에 판매했는데, 행사 기간 판매량은 전주 동일 시간대보다 85% 증가했다. 쓱데이를 맞아 신세계푸드가 출시한 노브랜드버거 짜장버거는 타 브랜드 일반 버거보다 20%가량 두꺼운 고기 패티와 단품 2900원, 세트 4900원의 가격으로 화제를 모으며 6일간 5만개가 팔렸다. 이마트에브리데이는 흠은 있지만 맛에는 지장 없는 가성비 신선식품 브랜드 ‘신선흠’ 7개 품목을 일반 농산물보다 약 40% 싸게 팔며 3일간 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가성비 PB상품, 유통업계 효자로
유통 마진을 줄이고 판매가를 낮춘 PB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통사마다 히트 상품도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 롯데마트가 지난 5월 출시한 PB ‘오늘좋은 물티슈’는 일반 상품보다 40% 이상 저렴한 가성비를 앞세워 물티슈 상품군 전체 판매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편의점 CU는 기존 브랜드 상품보다 절반가량 저렴한 PB ‘헤이루 득템 시리즈’를 통해 올해 165%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특히 삼양식품에 제조를 맡긴 헤이루 득템 라면의 경우 1봉당 500원이 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매해 2021년 3월부터 현재까지 누적 420만개가 팔렸다. 1봉당 500원꼴로 판매하는 홈플러스 PB ‘이춘삼 짜장라면’도 지난해 12월 출시 이후 이달 누적 판매량 1000만개에 달하는 실적을 냈다.
김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