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공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10월 세계경제전망에서는 한국경제의 2023년 ‘GDP갭률’(실질국내총생산이 장기 추세로부터 괴리된 정도)이 하향 조정되었다. 4월 전망에서도 추세를 밑도는 경기침체가 예견되었다. 그런데 10월 전망에서는 내년에 침체가 더 심해진다고 내다봤다. 미국에 대해서는 4월만 해도 내년에 호황이 이어진다고 예측했지만 10월에는 아예 침체로 전망이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미국경제가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 때는 대개 약 6개월 앞서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이 있었다. 연준의 바람과 달리 이번에도 미국경제는 침체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물가급등이 주로 공급망 교란 등 거시경제 공급 측면과 연결된 요인에서 유래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에 금리 인상은 수요(생산물의 구매)를 억제하려는 것이어서, 치료를 위한 ‘처방’이 질병 원인의 ‘진단’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이 시민들의 물가상승에 대한 예상을 변화시키는 ‘기대경로’를 통해 물가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변해 왔다. 그러나 그 주장은 증거가 대체로 취약하다. 최근에도 학계에서는 한국의 경우 기대경로가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실증 연구가 발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굳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두 가지 정도일 것 같다. 먼저 생산부문에 따라서는 공급조건 악화로 일종의 병목 현상이 초래될 수 있는데 그로 인한 물가압력을 완화하려면 억지로라도 수요를 공급에 맞춰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공급 병목을 해결하려면 공급망 안정화나 생산능력 확대 등 해당 부문의 공급조건을 개선시키는 직접적인 조치가 훨씬 더 효과적이다. 따라서 이런 설명은 별 설득력이 없다.
다른 이유도 있을 법하다. 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않으면 환율이 뛰면서 물가도 더 오른다는 걱정은 그럴듯하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어쩔 수 없이 올려야 한다는 이창용 총재의 발언은 차라리 솔직하다. 어차피 연준에 끌려가는 운명이므로 미리 금리 수준을 예고하겠다던 ‘포워드 가이던스’는 애초부터 가당치 않았지만 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책’과 ‘체제’의 문제는 확연히 다른 것이 되고 만다. 달러 패권이 지배하는 체제에서 주변부 나라의 정책은 선택지가 좁은 탓이다. 대신에 연준이 세계경제의 멱살을 틀어쥔 오늘, 한국은행이 금리를 조금 더 올린다고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포트폴리오 조정의 폭력적인 과정 자체를 피해갈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다만 필자는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의 국내 영향에 대해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한 연구는 경기침체 기간에 심화된 불평등이 경기회복 과정에서도 나아지지 않는 ‘불평등의 이력현상’을 보고한 바 있다. 금리 인상이 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쉽다는 사실을 한국은행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하락한 실질임금은 침체 국면에 들어서면 회복이 어렵다. 향후 경제가 정상궤도로 복귀하는 과정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노동소득이 회복되지 않으면 온전한 경제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금리 인상이 가계부채의 신용위험을 키워 도리어 금융 불안을 자극할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한다. 한·미 간에 금리 차가 벌어지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과거에 1.5%포인트까지 역전된 상태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연말까지 연준이 금리를 4.5%로 올린다고 예상하면 한국은행은 최근 도달한 3% 수준에서 추가 인상 없이 버티는 편이 최선일 수 있다.
향후 금리조정에서는 정책 기조와 관련된 요인들을 충분히 재검토해야 한다. 요즘 한국은행은 물가상승률이 5%를 계속 넘어선다면 금리 인상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후행 지표(지나간 과거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에 의지해 금리를 조정하는 잘못된 방식이다. 2년씩이나 걸린다던 정책시차(정책효과가 발현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는 잊었는가. 지금 이루어지는 금리 인상의 효과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잦아들고 경제가 침체되는 미래 시점에 가서야 발현되어 결국 침체만 가중시킬지 모를 일이다. 한편 필립스 곡선(물가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곡선)의 기울기가 수평에 가깝다는 사실도 고민되어야 한다. 분계점을 찾는 방식으로 구간 선형 필립스 곡선을 추정하면 한국경제는 올해 들어 수평 구간에 진입해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말 수평 구간에 있다면 금리 인상으로는 실업만 늘리고 물가는 못 잡는다. 통화정책 기조, 이젠 제대로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