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앞두고 여행상품 취소 날벼락
지연대금 1000억대… 피해 늘 수도
대통령실 “신속 파악 뒤 대책 마련”
고객 6월 결제만 1조 1480억… ‘큐텐’ 무리한 몸집 불리기가 화근
이커머스 업체인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판매자에 대한 대금 정산뿐 아니라 소비자 환불도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상당수의 상품 판매가 중단되고 신용카드 결제도 막혔다. 두 곳은 싱가포르의 이커머스 기업 ‘큐텐’의 계열사다. 큐텐이 최근 2년 새 여러 기업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린 것이 독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티몬에서는 결제·취소 등 신용카드 거래가 모두 막혔다. 사실상 온라인 쇼핑몰로서의 정상 영업이 안 되는 상태다. 대통령실은 이날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소비자와 판매자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공정위와 금융당국에서 신속히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정산 지연 사태는 위메프에서 먼저 발생했다. 지난 8일 입점 판매자 500여명이 지난 5월 판매한 대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위메프는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전산 시스템 오류였다면서 “정산 지연된 판매자에게 연이율 10%의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같은 큐텐 계열사인 티몬에서도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가 일어났다. 티몬은 지난 22일 판매자 공지를 통해 “부득이하게 정산금 지급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른 시일 내 정상화하겠다”고 전했다.그러는 사이 하나투어, 모두투어, 노랑풍선 등 주요 여행사들은 티몬과 위메프에서 팔던 여행상품을 대부분 삭제하거나 잠정 중단했다. 특히 여름휴가철을 맞아 여행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취소 사례가 속출했다. 롯데쇼핑과 현대홈쇼핑, 신세계 등 대형 유통기업들도 티몬과 위메프에서 잇따라 철수했다.
업계에서는 입점 판매자들이 제때 받지 못한 금액의 규모가 최소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위메프와 티몬의 결제 추정액은 3082억원, 8398억원이다. 사용자 수도 위메프 432만명, 티몬 437만명에 이른다. 사태가 장기화될 시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네이버와 11번가 등 오픈마켓 쇼핑몰은 고객이 구매를 확정하면 바로 다음날 판매자에게 대금 100%를 지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위메프는 상품 판매가 된 달 말일을 기준으로 두 달 후, 티몬은 40일 이내 정산을 해 상대적으로 정산 주기가 길다. 정산과 대금보관, 사용 등에 관한 법 규정이 없어 정산 주기가 업체마다 들쑥날쑥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큐텐이 무리하게 몸집을 불린 것이 유동성 위기를 낳았다고 보고 있다. 큐텐은 G마켓 창업자인 구영배(58) 대표가 2010년 세운 회사다. 그는 2009년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하고 이듬해 싱가포르에서 큐텐을 차렸다. 큐텐은 2022년 티몬을 시작으로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AK몰과 미국 위시 등 국내외 이커머스를 연이어 인수했다. 큐텐의 규모를 키워 산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티몬과 위메프 모두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있다. 두 기업 모두 수년간 적자 상태에 있다. 티몬의 2022년 유동부채는 7193억원, 유동자산은 1309억원으로 쓸 수 있는 돈보다 갚아야 할 돈이 더 많다. 티몬은 지난 4월 마감이었던 지난해 감사보고서도 제출하지 못했다. 위메프도 지난해 유동부채가 3098억원으로 유동자산(617억원)보다 5배 많다. 업계 관계자는 “인수를 통해 판매자 수와 상품 수를 늘려 물동량을 확보하겠단 시나리오였지만 계열사 간 시너지가 안 났다”고 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논란이 계속되자 결제 대금을 보관하지 않고 제3의 금융 기관과 연계한 ‘에스크로’ 방식의 정산 시스템을 다음달 중 도입하겠다고 했다. 현재 구 대표는 국내에 입국해 해결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사가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아 퇴직금도 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민사상 채무 불이행 문제여서 공정거래법으로 직접 의율(법규를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최근 서울 강남구 큐텐코리아 본사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조사는 정산 지연 사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